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 사도 3,1-10;루카 24,13-35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여러분들 본인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마도 많은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학력, 그동안의 여러 이력사항, 자격증, 여성들의 화장, 가방이나 장신구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은 없어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요즘같이 컴퓨터 해킹이 시도되면 그런 이력사항, 입금된 금액들이 한순간에 몽땅 날아가 버릴 수 있고요. 집이 타버리거나 한다면 고스란히 잿더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요? 예전 어떤 본당에서 청년이 예수님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이른바 ‘예수님을 못 믿겠다’ 는 것이지요. 저는 하나하나 논박을 하기에도 지칠 노릇이고 이것을 사회적인 시각에서 말하기도 원치 않았기에, 마태오 복음 밑에 각주부분만을 다 모아서 주면서 ‘이 내용을 읽어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밑에는 작게 ㄱ,ㄴ으로 되어있는 각주에는,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내용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 이뤄졌는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태인이었던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이 들어왔던 구약의 예언을 나열하면서 예수님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실현되었음을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증언을 한 사람의 삶은 어떨 것 같습니까?
오늘 독서에 베드로는 불구자를 만납니다. 그 불구자는 뭔가를 구걸하는 투로 바라봤던 모양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는 사람을 살려냅니다. 예수님은 오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을 만나 답답하신 나머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받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꿈뜨냐?” 그러다 빵을 쪼갤 때에야 비로소 당신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여러 추측이 나올 수 있겠지만, 부활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이 친근함이었다면, 죽음을 이긴 부활 이후의 주님은 친근함을 너머선 구원자의 모습이었기에 못 알아본 모양입니다. 그럼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요?
도덕경에 보면 피갈회옥(被褐懷玉)이란 말이 있습니다. ‘겉은 허름한 베옷을 입고 있지만, 가슴속에는 영롱한 옥을 품고 있다’ 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이는, 외면의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가슴에 품은 옥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름 하나만 붙잡고 산 사도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때,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