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2014. 3. 24. 오후 10:43:59

글자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이사야 7,10-8,10;히브리 10,4-10; 루카 1,26-38

 몇 년 전 개봉한 영화중 노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21세기 세상에 성경의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순수히 만드는 것을 허락할 리 없습니다. 영화사는 요즘 트랜드에 따라가려고 환타지를 넣었구요. 대신 감독은 그걸 허락하면서, 감독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심리를 집어넣습니다. 노아라는 인물의 심리를요. 감독은 노아를 하느님의 소명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하느님은 죄 덩어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카인의 후손들을 쓸어버리려고 자신을 도구로 쓰셨기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 모두가 끝내는 죽어야 하고, 임신한 며느리를 향해서는 손주가 딸이라면 당장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칼까지 빼들면서 끝내 죽이지는 못하였지만,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그리는 차원에는 수긍이 갔지만, 한편으로 소명에 사로잡히다보니 기쁨이 그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소명에 굳어버린 인간이 보여 답답했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했습니다. 화답송에는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라고 나오고요. 미혼의 아가씨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에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답합니다. 과연 이 응답에 대해 그들은 기쁨과 설렘이 없었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이런 것이 떠올랐습니다. 소명의 길은 자신이 가긴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일이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제의 삶이 그렇고, 결혼의 삶이 그렇잖습니까? 다음 일을 몰라야 갈 수 있습니다. 알면 일단 두렵습니다. 벌어질 일을 뻔히 안다면, 상대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시간을 좀 달라.’ 고 조를 것이고요. 주교님께는 제가요..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면 안될까요?’ 라고 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 소명은, 시간이 갈수록 흔들려 갈 것입니다. 이제 그 소명은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부담만으로 가득하다면 우리에게는 너무 가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소명을 통해 우리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끄십니다. 그 차원은 자유를 만나는 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나를 쥐어짜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지킨다고 하여 나를 해치거나 죽일 수 없음을 나중에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명을 받아들이면서 이런 장면을 목격해야겠습니다. 사람이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다보면, 물이 옆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질까 겁나지만, 물살을 헤쳐나가면서 나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쳐다본다면 우린 더 이상 겁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물을 수영하면서 건너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4년 3월 26일 오후 2:44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