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서 모임 개강미사

2014. 3. 3. 오후 11: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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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서 모임 개강미사

  성경을 공부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예전부터 읽고는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기에 이제는 한번 쯤 읽어봐야겠다.’ 하시는 분도 계시겠구요. 말씀의 뜻이 뭔지 알고파서 오신 분들도 있으시겠구요. 또는 말씀대로 살고파서 오신 분도 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왔고, 어떤 흐름으로 가고 있는 지를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저도 어릴 때는 좋아하는 부분부터 읽었습니다. 잠언, 집회서 등의 교훈서부터 시작을 했지요. 마치 어린아이가 명심보감 읽듯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부르심을 느끼면서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신학교 동아리 중에, 신약반이라 해서 신약성경 공부반에 들어가 여러 성경 지식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연구하고 공부를 하게 됩니다. 지식적인 면을 익히면서도, 나눔을 통해 서로가 다양하게 느낀, 말씀의 신비에 대해 깨달아 갔습니다. 그러다 신부가 되고 강론을 준비하고 개인적인 묵상시간이 늘어가면서 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은 글자에 막혀 있지 않다.’ 고요. 요한 복음 21장 마지막 구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그 분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요즘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 성경공부를 시키는 곳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존에 열심한 교우들이 거기로 빠져드는 것일까요? 알 만한 사람들이 말이지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확실히 알고 싶어서이기 때문니다. 확실히 알고 싶다는 것이 왜 문제일까요?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예전보다 잘 알고 싶어서 라는 대답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 이라는 글자가 붙은 책들은, 다른 책들처럼 손바닥을 보듯 훤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안개가 낀 듯 여겨지기에, 누가 풀이를 해주어야 하고, 시대의 변천의 흐름에 따라,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 육즙이 짜 나오는 듯 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받은 교육의 방법이란, ‘내가 읽으면서 확실한 느낌이 드는 것이 최고인 것처럼 받아들여 왔습니다. 당연히 2천년 역사의 시간의 흐름이 담긴 책인지라 참 의미가 무언지 잘 헤아리기 어렵구요.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는 그 때에 돼서야, 비로소 확실한 의미가 파악되는 얘기들도 있습니다. 마치 12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 받았지만, 순교를 할 때에야 비로소 느끼는 그런 경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분들은 지금 배울 때 다 알아들어야 한다 고 여기십니다. 성경공부를 마치 하나의 정보처럼 보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배우는 학생들 속에서 조급증이 생겼습니다. 배웠으니까 다 알아들어야 한다며, 자기의 이해도를 더 중요시 여기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경험을 하셨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지, 미스 시절 때 아무리 이야기를 들었어도, 정작 낳고 키워보기 시작할 때에서야, 비로소 그게 무슨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이론적인 바탕이 나를 꼭 살려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중시한 이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이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 배울 때에는 전반적인 배경지식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알쏭달쏭한 비유 같은 이야기도 알아듣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린 2014년 현실을 살면서, 지금 나의 인생 현장에서 벌어지는 주님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상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 속에 나온 이야기들은 당신이라는 분을 알기 위한 하나의 도구요, 틀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갇히려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런 장치가 필요하지만, 그 공부를 어느 정도 넘어서면, 당신의 의도가 보일 것입니다. 책에 다 담아내지 못한 당신의 의도, 그 뜻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분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처음부터 확실한 것을 얻으려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말씀은 살면서 조금씩 새로움을 느끼는 신선한 바람과도 같습니다.

  히브리서 412절의 말씀인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그 힘이 나를 어떻게 살려내는 지 보는 시간이 되시길 희망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주님의 새로운 차원을 만날 것입니다.

댓글 1

  • 2014년 3월 4일 오전 9:4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