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열왕기 상 11,29-12,19;마르 7,31-37
우리는 귀가 두 개 가 있는 관계로 많은 소리를 듣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귀가 있다고 해서 꼭 잘 들을 수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소음이 넘치는 와중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만 골라 들을 수 있는 능력도 있고요. 듣고 싶어하는 소리에 치중하여 남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된 목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아무래도 신앙인이라면 하늘의 소리를 듣고 싶어할 것입니다. 주위 분들 중에도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어떤 메시지를 들었다...’ 하면서요. 사실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이 신앙이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그동안 들어왔던 성모님의 메시지 등이 그런 예입니다. 물론 교황청에서 조사는 들어갑니다. 제대로 된 것인가 하고요. 우리나라의 나주 윤 율리아 사건도 조사가 들어갔었구요. 하지만 어떤 메시지는 사적계시로 공포되고, 어떤 메시지는 오히려 교회의 지탄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메시지는 어떤 방향에서든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난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가 더 큰 일입니다.
오늘 예로보암은 아히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내용인즉슨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즉 왕이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마치 요즘 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이라는 꿈 해몽처럼 말이지요. 이 말을 들으니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건설현장 감독관 출신인 그의 눈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현실이 되기 위해 그는 자연스런 방법을 쓰는 대신 꼼수를 둡니다. 하느님의 말을 더 믿으며 기다리기보다는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베텔’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면서, 백성들에게는 두 금송아지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해준 신이라고 속입니다. 이로 인해 솔로몬 이후, 갈라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정치 뿐 아니라 종교까지도 갈라지게 되었고 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2열왕 10,29)’의 아들이란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한 치릴로 수도자와 메토디오 주교님은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슬라브말로 번역하여 전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들입니다. 영어를 해석해보신 분들은 아십니다만, 그 나라 언어의 뉘앙스와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우리말로 자연스레 옮기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하려면 원문의 정확함과 정밀함을 추구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 될 수 있는데요. 복음에서 “에파타” 하면서 “열려라” 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의 메시지를 듣고싶다면 어디부터 열려 있어야 할까 고민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