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화요일.
오늘 누구나 다 아는 예수님의 족보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방금 여러분이 들으신 마태오 복음에 나오고 있는 족보에 나오는 5의 여성은 누구일까요? 방금 들으셨잖아요? 말씀하실 수 있지요? ㅎㅎ 답은 이렇지요.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마리아...이 여성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정말 왕의 계보가 맞아?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대단히 창피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타마르부터 보면, 타마르는 시아버지의 아들을 낳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사연이 있었습니다만 결론만 따져보면 비윤리적입니다. 여호수아기에 나오는 라합은 창녀였습니다. 룻은 남편을 여의고 보아즈와 결혼하는 모압 여자, 즉 이방인 여자입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고의든 아니건 간에 다윗과 정을 통했으니 오늘날로 치면 간통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다음 성모님, 성모님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았다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 혼전 임신에 대해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다섯 명의 여인을 생각하면, 하느님 구원사업의 오묘하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창피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마태오는 유다인들을 향해 이런 역사를 쓰고 있으니, 그 당시 자신들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선민사상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발언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단일민족이라고 스스로 자존심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주여성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그들에게서 나온 2세들을 따돌리지 않고 잘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 구원 역사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끌어져 나가고 있다고요. 좋든 싫든 받아들일 때, 내가 생각한 구원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나라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주일 복음에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시켜 묻는 장면이었습니다. “오실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무리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자기가 원하는 구세주상에 사로잡혔던 것이지요. 하느님의 나라는 나의 예상범위를 넘어서는 구역에 있습니다. 당연히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나의 예상범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길 바랍니다. 말로는 하느님의 뜻대로 했지만 실제 맘속으로는 내 뜻이었습니다. 실수와 창피함과 상처 속에서 때와 딱지는 떨어지고 새 살이 돋아납니다. 그 새 살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