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4 주간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번 주는 교회에서 전례력으로 보자면 연말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교회의 새해인 대림절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 해 동안 우리가 아는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 여기면서 지내오셨습니까?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 ‘ 하느님의 어린양’ ‘목자’ ‘구세주’ ‘메시아’ 등으로 부릅니다. 여러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 그만큼 그 분에 대한 사랑이 보이는 모습이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그냥 ‘예수님’ 이 정도로만 부르셨습니까?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여러 호칭을 부릅니다. ‘자기야~, 우리 애기, 반쪽이, 울서방, 겸둥이, 찡찡이...’ 이래가며 애정을 과시하는데 우린 너무 무관심하게 그 분을 부른 것이 아닌 가 여겨집니다. 여기서 주님을 부르는 호칭 중에 또 하나라 할 수 있는 ‘임금’ ‘왕’ 이 나옵니다. 하느님과 상관없이 지낸 이방인인 동방박사들도 예수님을 구세주라 여기고 왕이라 부르면서 온갖 예물을 갖다 바쳤는데, 우린 그러한 분을 믿으면서도 주님을 ‘나의 임금님, 나의 왕’ 이라 부르기 어려워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못하게 가로막습니까? 단순히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요?
예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마에서 해방시켜줄 힘 있는 왕이 오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오셨다는 왕은, 그것과 너무 상관없어 보입니다. 구유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며, 죽을 때는 사형틀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나보다 더 약해 보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사셨을까요? 그 답은 우리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계획하면 척척 다 해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고 싶어도 사정이 안되서 그렇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만 있을 뿐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를 봅니다. 참으로 약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의 구세주가 모든 것을 척척 해내고,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가며, 천재적인 재능으로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분이라면, 처음에는 감탄을 하면서 그분을 좋아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을 느낄까요? 나와의 괴리감, 나하고의 차이를 확인합니다. ‘그 분과 나는 다르구나...’ 하면서 곁에 다가가지지 않는, 다가가기 꺼리는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성인들도 그랬지요. 처음에는 약했습니다. 욕심도 많았고, 비윤리적인 모습도 보였구요. 하지만 그들은 주님으로 인해 변모됩니다. 그런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원하는 그러한 왕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왕이십니다. 우리처럼 약하고 비천하게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사시면서 그 힘을 드러내십니다.
당신은 자신의 능력을 감추면서 우리와 같아지기를 서슴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자신을 낮추면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는 왕, 잘못했다고 곧바로 혼내지 않고 참회하도록 기다려주는 그런 왕, 당신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 왕이시기에 다윗은 그가 노래한 시편 74장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나의 임금님, 땅 위 모든 곳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옵니다’ 당신이 쓰신 구원의 방법은 이랬습니다. 연약하게 오셔서 힘 제대로 안 쓰시고 돌아가십니다. 폭도들은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해보아라” 라고 말했지만 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에서 승리하셔서 더 이상 죽음을 겁내지 않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떤 분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성경의 인물들과 교회의 기틀을 세운 교부들은 승리의 임금님에 대해 여러 호칭을 불러드리면서 그 분을 부르고 찬미해 왔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 분을 우린 무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 주님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더 열렬한 마음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를 통하여 이웃을 통하여 참된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연중 제 34 주간 그리스도 왕 대축일(어린이용)
많은 어린이들이 강해지려고 하지요? 그래서 어떤 방법을 쓸까요? 우선 공부를 잘해서 성적을 통해 힘을 과시하는 방법이 있겠지요? 성적이 좋다는 말은 그만큼 남보다 강하다는 뜻이지요. 또 어떤 친구는 힘으로 과시합니다. 그래서 힘을 통해 친구들에게 확인시키지요. 친구를 때리거나 물건 등을 빼앗기도 하고요. 또 뭐가 있을까요? 재능도 있지요? 남 앞에서 뽐내면서 무언가를 과시하는 것도 자신의 강함을 보이는 방법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은 어떤 방법을 썼을까요?
예수님은 별로 힘이 없어 보여요. 우선 태어난 것도 소나 말이 먹는 밥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시지요. 집안도 별 볼일 없었어요. 목수의 아들입니다. 돌아가신 것도 화려한 장례식장에서 가신 것도 아니라 사형 당하셔서 돌아가시지요. 물론 나중에 부활하시지만요. 솔직히 남 앞에 자랑하기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가리켜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래요. 예수님이 왕이래요. 이걸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우리 친구들 중에 공부도 크게 잘 하는 것 같지 않고, 힘도 없어서 싸움도 못하고 게임도 잘 못하지만, 그래도 착한 마음을 가지고 옆 친구들을 도와주는 친구가 있어요. 남들이 꺼리는 청소나 이런 것도 묵묵히 하고요. 그럼 걔는 뭐죠? 이상한 아이인가요? 그런 친구를 보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점차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구나.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구나’ 예전 6학년 때 이런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그 친구와 심하게 싸웠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직도 기분이 덜 풀려 있는데 먼지 손을 건네면서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내가 잘못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잘못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먼저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얘는 나보다 낫구나.’ 라고요. 예수님은 그런 분이셨어요. 비록 가난하게 사셨지만 그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하신 분이셨지요. 그 분에게 출생, 능력, 이런 것은 중요치 않았어요. 어떤 사랑을 베풀면서 사는가?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다음 주는 대림절의 시작이에요. 교회달력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럼 교회적으로 오늘은 연말인 셈이지요. 한 해 잘 살았나 살펴보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