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4주간 월요일

2013. 11. 24. 오후 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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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4주간 월요일. 다니엘 1,1-20;루카 21,1-4

  오늘 유다의 자손인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 4명의 젊은이는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들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채소와 물만 먹으며 버팁니다. 그리고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렙톤 두 닢을 넣으며 참된 봉헌을 합니다. 여기서 우린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분명히 없는 와중인데 여기서 더 많은 것을 얻는 신비를 보고 있습니다. 이들 젊은이들과 과부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기도였을까요? 분명 자신들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삶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신의 모든 활동에 대해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욕망을 가진 이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니아스와 그의 아내 사피라 이야기입니다. 이 부부의 문제점은, 모두들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 놓는 데, 이들 부부만 서로가 짜고 일부만을 내놓다가 하느님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사람이란 것이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욕심이 생기면, 그 때부터 부자유스러워집니다. 성당도 이제 어느 정도 이윤을 남기고 있습니다. 자판기부터 시작하여 성물 판매소, 하늘 땅 물 벗, 등 비록 적은 이윤이 나오지만 나오긴 합니다.  더 팔려고 하다보면 이윤에만 신경을 쓰게되면 자신의 투명했던 영혼이 부자연스럽고 메말라 갑니다. 즉 탐욕이 자유를 앗아가 버렸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도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물건을 판다는 사실은, 실제로는 그 물건을 놓아준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것을 놓아줄 때, 합당한 가격 속에서 욕심은 사그라듭니다. 하지만 더 챙기려고 할 때, 나는 중독됩니다. 눈앞에 이윤에 내가 메여 버립니다. 비록 내가 얻는 것이 없고 성당이 얻는다고 할 지라도요. 이것은 어떠한 사업을 하고 있는 수도회나 수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잘해야 한다.’ 라는 미명 하에, 공동체가 더 삭막해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우리 안에 들어있는 욕심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일하면서도 기도한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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