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 주일

2013. 11. 2. 오전 1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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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1 주일 성인 미사. 지혜서 11,22-12,2; 2데살로니 1,11-2,2; 루카19,1-10

  찬미예수님! 교우여러분 일주일 동안 안녕 하셨습니까?

 

저는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 학창 시절, 미술시간 때 한번 쯤 해보았거나, 보았을 법한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모자이크와 점묘화입니다. 모자이크는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찢거나 오려 붙여가며 그림모양을 표현하는 기법이고, 점묘화는 그림을 그릴 때 붓으로 그리거나 칠하지 않고 대신 붓으로 점을 찍어가면서 표현하는 필법을 말합니다. 이런 그림들은 사실 그리기도 힘들고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한번 붓으로 쓰윽 그리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무슨 그림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모양과 색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모양도 불규칙적이므로 보기에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면, 그 통일성과 일치감이 우리를 색다른 감동으로 이끌어주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종이 다르고, 나라마다 특징이 다르고, 같은 집안에서 태어난 가족이라도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이해하길 꺼려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당신의 영이 살아 숨 쉬는 사람들입니다. 창세기 2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우리 각각은 하느님으로부터 당신의 같은 숨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같은 숨 속에서도 각각의 다양함을 허락하시어, 세계의 자연모습과 문화유산이 다채로울 수 있음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여행을 다녀보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에 대해서는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에 대해서는 참으로 인색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라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를 보는 시각은 좋지 못합니다. 그는 키가 작은데다가 부자였고, 모두가 죄인이라 일컫는 세관장이라는 사실에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투덜거립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면서요. 만약 자캐오가 그저 예수님을 초대한 것으로만 끝났다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변화되는 삶을 보여줍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세관장이는 돈에 대해서나 삶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 셈이 빠르고 계산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잘 모으지만, 주는 것에는 인색한 그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주님으로 인해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이 모습 속에서 모두가 주님으로 인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당신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다 다른 양상을 가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십니다. 우린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봐 주고 있습니까? 잘 받아들여 주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잘 사는 관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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