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일

2013. 11. 30. 오후 2:22:47

글자

대림 1주 가해. 1독서 이사야2,1-5; 로마서 13,11-14; 마태오 24,37-44

  벌써 대림이 다가왔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하여 여러분께 새해 인사 올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서로 인사들 나누십시오~) 신앙인이라면 교회의 방식으로 인사를 해야 하겠지요? 이처럼 새해는 오늘 대림 1주일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는 모든 때의 시작을 당일, 그 날에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를 기다리면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야만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마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자식들의 안녕을 위해서,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또는 가족이 올 한해도 별 탈 없이 지내기를 간구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바라는 바 안에서 어떠한 참회와 반성이 있습니까?

  대림절을 맞이하여 판공성사를 봅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주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많은 분들이 고해성사를 잘못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고해하신 지, 석 달 또는 6개월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막상 고하는 죄는, 주일 미사 빠진 것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물어 봅니다. 성사 보신 지 이만큼 되셨는데 그것만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한데요?” 하고 말씀드리면, 그제서야 하나 둘씩 밑에 깔려있던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죄를 고하는 와 중에서도 본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구나. 그것이 본인을 살려준다고 믿는구나마치 이런 것이죠. 병원에 종합검진을 받으러 갑니다. 여기서 의사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질문에 응해야 병이 나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말하고픈 것만 이야기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게 자신을 지켜주는 행동일까요? 하지만 자기를 지키고만 싶었던 행동으로 인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진정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았으니까요. 치유가 되지 않으니, 내 삶은 기쁘지가 않고, 밑에 깔려있던 예전의 문제는 계속 이어집니다. 아마도 자신을 다 개방하면 무너진다고 여기시는 모양입니다. 여기서 아담이 지었던 원죄가 생각납니다. 원죄의 시작은, 하느님 없이도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다 고 믿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해하면서 동시에 내가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고해를 해야 내가 다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 자신이 치유되고 싶었다면,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대다수가 그러하질 못하기에 예전 문제에서 헤매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상처가 치유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기가 안 통하게 꼭꼭 싸매 놓습니까? 오히려 상처를 바깥 공기와 만나게 해줘야 치유가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나의 것을 개방할 때, 자존심마저도 무너뜨릴 때, 여기서 진짜 치유는 이뤄집니다. 대림절은 바로 그런 기간입니다. 그렇데 될 때 어떻게 달라집니까? 1독서인 이사야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칼과 창을 들었던 손이 그것을 가지고 농기구인 쟁기인 보습과 낫을 만듭니다. 칼과 창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생각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움트는 땅을 경작하는 농기구로 변모됩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았던 삶이 달라진 것이지요.

  언젠가부터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행복이란, 내가 원하는 것이 실현되는 것이 행복이다.’ 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뭐가 문제가 될까요? 당장의 것만을 봅니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세웁니다. 하지만 목표라는 것이, 자신이 가진 것과 미지의 외부가 만나야 이뤄질 수 있는데, 생각만큼 돌아가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미움이 발생됩니다. 나 이외의 것을 미워하고, 실현되지 않아 괴로워하고, 자신을 들볶고, 현실을 저주합니다. 여기서 이것을 봐야 합니다. 목표만 보는 사람은 현실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요. 그런 사람은 현실에서 목표를 이뤘어도,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울 것입니다. 그런 이들은 즐거운 생활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린 진행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삶의 진행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사건들 속에서 그 만남이 나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행복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나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고, 남에 대한 괜한 기대와 의지는 사라집니다.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시시각각으로 느껴갈 때, 나는 행복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대림절은 나를 재정립하는 기간입니다. 그럴 때 오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립이 되지 않은 분들이라면 구세주, 메시아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계획안에서 예수님이란 분은 원래 없는 분이니까요. 있다하더라도 부수적인 인물에 불과하니까요. 바람직한 기다림의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대림1주 가해. 1독서 2,1-5;로마서 13,11-14;마태오 24,37-44어린이 미사

 

봉달: 신부님, 신부님 오늘이 대림절이라는데 그게 뭐예요?

 

 

신부: 넌 주일학교를 몇 년 째 다니는데 그걸 아직도 몰라?

도대체 너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누구시니?

 

봉달: ~~ 저의 선생님은요. 본인은 이쁘다고 자꾸 강요하는데...

그 사실을 저는 전혀 잘 모르겠는 .....선생님이요...

 

신부: .....선생님이 뭐라도 하셨는데?

 

봉달: 저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기억이 나요.. 대림은 기다리는 다. 라고요... 근데 뭘 기다려야 해요? 전 솔직히 기다리는 것 ,짜증 나거든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게 버퍼링이라서요!

 

신부: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오히려 봉달이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봉달:제가 안다고요? ! 맞아요... 빨리 미사 끝나기, 지루한 강론 어서 끝 나기, 그리고 교리시간 끝나고 어서 게임방 가기. 그게 제일 기다 려져요..하하...

 

신부: 네 입에서 내가 뭘 기대하겠니?

 

봉달: 그럼 뭐예요? 뭘 기다려요...? 날씨도 추운데.....

 

신부: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잖아? 왜 그런데 우린 아기 예수님을 기 다릴까?

 

봉달 : ~~~ 그건...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요?

 

신부: (놀라 같이 응답하면) ! 그래!!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

 

봉달: 백일 떡 먹어야지요!!!!!! 떡 얻어먹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다고요??

 

신부: 봉달아!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대림초를 오늘같이 키고 기다리는 것은 구약시대 사람들이 4천년을 기다린 것을 상징해요. 그만 큼 사람들은 구세주 예수님을 기다렸고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원했어요..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기다리면서 말이지... 이제 초 하 나가 켜진 만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이 밝아진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봉달: !!!!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지금보다 더 구 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산다는 말씀이군요?

 

신부: 그렇지요

 

봉달: 그럼 저도 열심히 예수님 기다릴래요. 예수님 통해 더 착한 어린이가 되면서 예수님처럼 사는 어린이가 참으로 모범적인 어린이니까요.

 

신부: 그래요 우리도 봉달이 말처럼 착한 어린이 되도록 예수님 기다려요

여러분 안녕...      

댓글 1

  • 2013년 12월 5일 오후 9:03

    봉달인 너무나 똑똑하네요. 저는 아직 봉달이만 못한듯합니다. 판공이 다가왔는데, 너무나 공감가는 말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대림기간 은혜받는 시간이길 두손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