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 주간 월요일. 민수기 24,2-17;마태오 21,23-27
사물을 대할 때 살아있는 것은 생물, 살아있지 않는 것은 무생물이라고 분류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요? 여기서 질문 한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금속은 생물일까요? 아닐까요? 이 질문에 바로 답하시기 앞서서 먼저 이 얘기를 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19세기 인도 벵골 출신의 자기디스 찬드라 보스라는 과학자가 우연하게 무선송신기의 금속판을 조사하다가, 오래 쓰면 성능이 떨어지는데 조금 쉬게 해준 다음 다시 쓰면, 성능을 회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 기계도 피로감을 느끼나?’ 하고 생각한 그는 여러 가지 자극을 주고 반응을 살피며 데이터를 쌓아나갔는데 결국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는 “금속도 생각한다” 는 이론을 발표합니다. 무생물이 기억체계와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당연히 영국 왕립 과학회의에서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그는 과학자로서의 생명에 치명타를 입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의 이론이 실제 생활에 활용되었는데요. 그 이론으로 개발된 것이 그 유명한 ‘형상기억합금’ 이 됩니다. 형상기억합금이란 이런 것이죠. 변형을 시켜도 일정한 기온이 되면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거나, 부드럽게 구부리거나 힘을 빼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성질의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치아 교정용 스프링이나, 쉽게 휘어졌다가 복원되는 안경 프레임 같은 경우가 그 예가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보면, 예전에 알고 있던 것만이 최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에서 발라암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리자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보통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그 환시는 나중에 예수님을 예고해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복음에서는 원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하고 따집니다. 그들의 딱딱하게 굳은 사고가 자신의 신앙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가둬버리는 형국이 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더 깊게 바라보지 못하고 풍요롭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알고 있는 단편적인 교리사정에 갇혀 있기 때문인데요. 당연히 이렇게만 알고 멈추면,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알지 못하게 되고 교회의 모습은 답답하게만 느껴질 뿐이지요. 앞서 인도의 과학자 찬드라 보스가 만물에는 영성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까닭이 아무래도 인도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발상이 나왔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우리도 초월적인 차원을 만나고픈 열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 오늘은 무엇을 주실까?’ 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