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일 미사. 집회 15,15-20;고린 1서 2,6-10; 마태 5,20-37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오늘은 방금 드린 인사말에 몇 마디를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주일미사로서는 여러분과 마지막 미사이니까요. 2년의 시간동안, 여러분을 만나 뵈오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어떻게든 새벽 평일미사에 나오셔서 열심히 기도하시구요. 거의 매 주,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학생들에게 식사를 마련해주고 계시고요. 드러나지 않게 봉사하시는 분들, 회사의 업무시간 중인데 불구하고, 본당 일을 위해 틈틈이 나오셔서, 뭔가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몇 % 되지 않으신 이런 분들이 성당을 이끌어가시는구나’ 하고요. 요즘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임하시는 모습이 다른 분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는데요. 그러는 한편 우리들의 부족한 점도 보였습니다. 옛 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될수록 당연히 보고 듣는 바가 많아지기 때문에, 체험하는 것도 많고, 경험도 숙련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반면, 하나하나 특별한 보배를 만나게 되지만, 이를 어떻게 연결하여 하느님의 참 뜻으로 나아가야 할 지 알아채는 것에는, 조금 부족해보이시던데요.
우린 이미 계명도 알고 주님의 지혜와 은총도 받은 사람들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그런데 우린 항상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성경의 인물 중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었을까요? 게다가 십자가 처형 때, 예수님을 살릴 수 있었던 열쇠를 가진 빌라도는, 왜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렸을까요? 여기서 우리들은 그동안 받은 하느님의 지혜를, 세상에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지혜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빌라도의 경우, 재판정에 서 계신 예수님을 살릴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 입장에서는, 로마라는 중앙무대에서 다시 정치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현재 자신은 이스라엘이라는 촌구석에 와 있습니다. 어떻게든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 점수를 따야만, 로마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라는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납니다. 조금 심문해보니 죄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면서 폭동을 일으킵니다. 자~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음처럼 예수님을 못 박는 것이 제일 쉬운 해결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 손을 씻지요. 자기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면서요. 그러면서 그 책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려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비겁한 행동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미 자기도 그게 ‘옳지 않다’ 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결국 빌라도는 자기가 살기 위해 백성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니체아 신경, 사도신경에 나오는 것처럼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라면서 빌라도라는 이름은 대대손손 비겁자로 낙인찍혀, 매 주일미사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살면 안되는구나를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빌라도는 판결을 잘했다고 여겼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끔 본당에도 보면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자면, 한 단체원 전부가 자진 사퇴를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단체를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라면 이런 단체적인 행동은 꽤나 위험한 행동이고, 이 같은 방법을 원하지 않는 같은 회원들에게는 폭력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소수 몇 명이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장 쓰지 말아야 할 방법을 쓰게 되면서 자기 스스로를 부셔버립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이 가르쳐주는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를 분간하면서, 세속적인 지혜를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비웃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세상 방식대로 배우셨고 살아오고 계시기에, 주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오히려 비웃지요. 그러나 결국 비웃음 당하는 것은 본인 자신이 되고 마는데요.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을 개혁가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의 생각을 현실화시킨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으로만 보이는 이 신앙이, 현실화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올해 125위 시복식이 있을 예정이라 교황님도 오신답니다. 이미 신앙의 선조들은 충분히 신앙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좋은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