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열왕기 상 8,1-13;마르 6,53-56
신부님이 되려고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사님들은 남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와일드한 모습을 갖고 있을까요? 그럼 여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금남의 구역 수녀원은, 언제나 부드러운 실크마냥 나긋나긋한 사람들만 모여 있을까요? 신학교를 다니면서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남자들만 모인 곳인데, 가끔씩 여성적인 취향을 가진 부드러운 학사님들을 만납니다. 다소곳하고 상냥하며 마치 새색시 같은 모습들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느낄 때 ‘얘들은 왜 이래?’ 하면서 약간은 이상하다는 반응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과 달리, 눈에 띄지 않게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할은 마치 짐승들만 모인 것 같은 삭막한 공간을 중화시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크게 티는 안 납니다. 하지만 가끔씩 참견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손짓이, 군대처럼 ‘신학교가 수컷냄새로 진동하는 곳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는데요. 여기서 이런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평소 행하고 있는 사랑의 패턴 방식을, 가끔씩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관심 한 듯 무뚝뚝하게 사랑을 표현하고요. 어떤 이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상냥하게 챙겨주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마음만 있으면서 실천은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전에 해왔던 방식으로만 사랑을 실천하십니까? 아니면 가끔은 다른 방법도 써 보십니까?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입니다. 이 사람은 수사님들이 지켜야 하는 수도원 규칙까지도 어기게 만들면서 사랑을 보여준 인물로 유명합니다. 오빠인 베네딕토 성인과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지요. 사랑이 규율을 넘어서고 있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복음에는 병자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예수님을 통해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 달려듭니다.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처럼 그들의 간절한 사랑이 비로소 기적을 만날 수 있게 했던 것이지요. 독서는 솔로몬이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는 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실은 그 궤 안에는 주님이 명하신 사랑의 계명, 십계명 판이 있었습니다. 즉 솔로몬은 주님께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요. 하느님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십니다.
사랑은 이처럼 여러 표현 방식을 통해, 정성 가득한 간절함을 통해, 이제껏 해왔던 예전 방식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차원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랑이 그렇습니다. 더 이상 예전 해왔던 사랑의 방식에서만 머물지 마십시오. 정체되었던 나의 사랑을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