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일 미사.

2014. 2. 9. 오전 7:21:33

글자

연중 5주일 미사. 이사야 58,7-10; 1고린 2,1-5; 마태 5,13-16

  자 여러분의 집에는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물건이 잘 담기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그렇습니다. 담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라는 것도 종류와 크기가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것은 앙증맞고 손에 딱 잡힐 만한가 하면, 어떤 것은 두껍고 무겁습니다. 게다가 이를 아무데나 놓으면 어지러워 보입니다. 당연히 이를 담을 잘 짜여진 틀이 필요합니다. 책꽂이나 찬장, 선반처럼 말이지요. 크기와 종류에 맞게 물건들을 넣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는 기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시대는 기분, 자기 현재의 마음상태를 중시하는 세상입니다. 내가 아니면 말고, 내가 좋으면 하는 것이고... 그런 세상입니다. 참된 것을 찾기보다는, 지금의 기분상태를 더 따지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분, 마음은, 마치 신호등처럼 지금의 현 상태를 알려주긴 하지만, 진실을 알려주지는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증상으로만 따지면 배가 아프지만, 실제 원인은 단순한 복통이 아닌, 위궤양이나 간염, 자궁이 잘못됐다거나 대장에 문제가 의심되는 등, 여러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상태를 잘 정리하고 담기 위하여 이성이라는 것을 중시하고 키워왔습니다.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현재의 복잡한 마음 상태를 차곡차곡 담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회에서는 학교교육을 통해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과목을 습득하면서 균형있는 사람을 만들었고요. 교회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던 하느님을 알려고, 교리라는 것을 통해 성령의 움직임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마치 바람 같은 주님의 메시지를 성경이라는 것을 통해 적어 넣었구요. 고해성사를 할 때에도 무슨 죄를 짓고 살았는 지 잘 모르는 나의 죄를 헤아리려고, 성찰표라는 것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이성이 2천년 동안 우리를 교육시켰습니다. 이른바 무질서하게 살 수 밖에 없던 인간의 삶의 틀을 제시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성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껏 배운 틀이 진부해 보이고, 어떻게든 이를 무너뜨리는 시대가 되면서 자신의 기분이 중요해졌습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이기에 뭐라 할 수 없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물어봅니다. “요새 왜 그래?” “그냥 기분이 그래~” “무슨 기분?” “나도 잘 몰라. 나 좀 나둬자기도 모르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가 자기 기분 상태에만 빠져 살다보면, 나도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러분 혹시, 그동안 받아왔던 상처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계십니까? 상처를 치유하고픈 분들에게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상처가 치유되려면 무조건 붕대로 싸맨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약을 바르고 상처가 공기와 통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지요. 그런데 상처 입은 분들의 많은 경우가, 무조건 자기를 가둬 놓습니다. 그러면서 상처를 계속 바라보면서 상처 부위를 벌리면서 확인합니다. 얼마나 내가 아팠는데~’ 하면서요. 낫는 와중인데도 가렵다고 딱지를 긁어버립니다. 당연히 다시 피가 나고 낫는 시간은 더뎌만 갑니다. 상처가 치유되려면, 자기를 개방하고 공기를 받아들이듯 외부와 접촉하면서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방금 말씀에 나왔던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함께하는 자세겠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좋은 신앙인이 되고 싶다면 무엇을 먼저 붙잡아야 할까요? 2독서에 나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기분과 취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분과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성질을 가집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도 호기심이 많아 수 많은 취미생활을 하였지만, 결국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없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쥐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복음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 아무 쓸모도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내가 제대로 설 때, 나머지도 이뤄질 수 있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