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 말라키 3,1-4;루카 2,22-40.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면 또 좋아하는 성가가 있게 마련인데요. 저는 그 중에서 봉헌성가를 더 좋아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를 바친다는 내용을 부르면서, ‘제가 하느님께 해드릴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참 기쁜데요.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방금 미사 전에도 초 축복식을 했습니다만, 이번 중에 많은 수도회, 수녀회에서도 서원식을 하고, 서품식 또한 이번 주에 있는데요. 초로 대변하는 자신을 봉헌하는 마음. 이 마음은 과연 어때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부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주님께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 사실 첫 아이에 대해서는 어느 부모라도 다 소중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둘째들이 조금은 서러울 수도 있는데요. 누구라도 첫아이는 소중하듯, 가장 처음에 만난, 소중한 것을 바치는 마음이야 말로, 어쩌면 신앙인의 가장 기본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삼손의 어머니 마노아도 임신하기가 힘든 사람이었지만 끝내 아들을 판관의 자리에 올라감을 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를 보십시오. 그녀도 어렵게 얻은 아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바쳐 훌륭한 예언자가 되도록 만듭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예수님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얼마나 아까운 아이입니까?정말 힘들게 얻은 자식이지만, 그녀들은 누구로 말미암아 이렇게 번듯하고 멋진 자식이 될 수 있었는 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바치면서, 내가 생각한 차원보다 더 큰 것을 마련해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을 체험하던 그 어머니들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라고 오늘 시메온은 말합니다. 사실 아기를 본다고 어디 미래까지 보이겠습니까. 그저 지금 옹알대는 모습만 보이지요. 하지만 그는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은, 확실히 현세의 것만 중시하는 근시안적인 사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우린 세상을 살지만, 세상만으로 살진 않습니다.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당신께 바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더 확고히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게 자신을 주님께 확실히 드릴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