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사무엘하권 24,2-17;마르코 6,1-6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의 습성을 보노라면, 자기 안에서 자신을 잘 비춰볼 줄 아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욕심이라는 것에서 자유롭기 힘듭니다. 뭔가 하고 싶어하고, 갖고 싶어하고, 이루고 싶어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니까요. 하지만 그 욕심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누구는 처음에 품었던 마음을 그대로 다 풀어내는 사람이 있고요. 또 누구는 그것이 욕심에서 시작되었기에 처음에는 자기 계획대로 시작하였더라도, 다시금 살펴보며 가졌던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데요.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십니까?
오늘 그런 욕심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먼저 다윗 왕입니다. 그는 임금입니다. 당연히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의 숫자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전쟁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지도 알고요. 백성을 부려 노역을 시킬 정도도 가늠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곧 후회하고 뉘우칩니다. 왜냐하면 백성의 원래 주인은 임금인 다윗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인이니까요. 그랬기에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라고 외친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욕심 있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낸 예수님의 행동에 질투를 느낍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같은 동네에서 지냈기에 자신들도 그런 재능이 있어야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지요?. 자신들의 욕구 충족이 되지 않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배척을 하면서 이상하게들 변해 갑니다.
여기서 우린 이런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작이 비록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다윗 왕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이유는,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비춰볼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는 아가타 성녀와 그녀를 보았던 사랑도 차이를 가집니다. 그녀가 가졌던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헌신에서 비롯되었고요. 아가타를 바라보는 나머지 사내들은 그녀를 가질 요량으로만 덤볐습니다.하지만 아가타가 마음을 열지 않자, ‘가질 수 없을 바에야 부셔버리겠다’ 는 심산으로 그녀를 죽이고 맙니다. 이것이 둘의 차이점이었습니다. 요사이 일본이 하는 행동을 보며 그런 것을 느낍니다. 지금 그들은 자기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미 그들은 자기를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하였구나’ 라는 것이 보입니다. 자신들의 욕심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를 그들은 못 알아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비록 사람들이 자신을 좋지 않게 보더라도 계속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분 안에서 하느님의 힘이 퍼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힘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