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일 미사. 이사야 49,14-15; 고린1서. 4,1-5. 마태 6,24-34
찬미 예수님. 일 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 자기를 소개하는 이 노래에서 “나~는~~” 으로 시작되는 가사에서 보통 들어가는 이름, 나이, 직업, 자격증 등, 이런 거 다 제외하고 넣어야만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글자를 넣으시겠습니까? 보통은 자기를 잘 드러내는 단어를 집어넣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름, 나이, 직업, 자격증 등이 나를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그저 남이 붙여준 것이거나 세월이 붙여준 것, 또는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 라는 인간성을 대변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나’ 라는 속인간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겉으로 드러난 나를 알려주는 정보차원이니까요. 자~ 이제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떼어놓은 상태에서 자기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민낯처럼, 발가벗겨진 상태로 전신거울을 들여다봐야, 자신의 참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왕으로 뽑기로 했답니다. 그러자 까마귀는 난감했습니다. 자기 깃털의 색깔은 까맣기만 한데다가 목소리도 흉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머리를 쓰기 시작합니다. 다른 새들이 떨어뜨린 깃털을 하나하나 주워다가 자기 몸에 꽂기 시작합니다. 왕을 뽑는 날, 모두에게 나가 자기를 뽐내던 중, 어떤 새가 ‘저건 내 깃털인데~’ 하면서 뽑아가자, 다른 새들도 일제히 달려들어 자기 것을 찾아가는 통에,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분께 질문을 드립니다. ‘그럼 까마귀의 깃털은 여러분이 보통 알고 있는 것처럼 까맣기만 한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기에, 어느 날 TV를 봤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까마귀는 까만색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에 비추어진 까마귀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까만 깃털 안에서 노란 색도 보이고, 붉은 색도, 보라색도 반사되어 비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그저 까맣기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까마귀는 자기를 더 잘 알고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깃털에서 윤기가 나는 다양한 빛깔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남을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지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안다고 여기는 통에 그냥 쓰윽 자기를 들여다 볼 뿐, 진정하게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기게 되면, 해결 할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걱정만 하고 있는 우리들을 보니까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오늘 복음을 들으실 때, ‘자기 걱정’ 에 사로잡혀 사시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걱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많은 분들이 먼저 하느님을 찾기보다는, 곁들여 받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원 상품보다 이른바 옵션(Option)에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물건을 사더라도, 그 상품이 좋아서 샀다기보다 1+1 때문에 구입합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알아차립니다. 옵션 때문에 눈이 돌아갔음을 나중에 후회합니다. 물론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다가오지 않은 것 때문에 겪는 불안과 걱정은, 사람이라면 다 있게 마련입니다. 만약 제가 이 강론을 준비하면서도 ‘이 내용을 교우분들이 좋아해줄까?’ 걱정 가득한 상태에서 쓰고 있다면, 제대로 된 강론이 나오겠습니까? 절대 아니지요. 이 강론을 준비하며 밀고나가는 힘의 원천은, 복음에서 뿜어 나오는 하느님 말씀 자체의 힘입니다. 그래서 오늘 알렐루야에서도 “하느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 속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나 자신을 통해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의 힘을 살펴야만 합니다.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그 힘을 들여다볼 줄 알 때, 괜한 걱정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나온 하느님의 말씀속에서 그분의 사랑이 어떤 지,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