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화요일

2014. 2. 24. 오후 10: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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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7주간 화요일. 야고보 4,1-10,마르 9,30-37

  본당에 오고나서 이틀 후에 전입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저도 민방위도 해야 하고, 얼마 후 있을 투표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른바 교육의 도시에 왔습니다. 신문 광고지만 해도 수유동은 그저 식당 광고 투성인데 여긴 학원광고 일색인 것을 보며, 같은 서울도 참 다르구나를 느낍니다. 저는 그 광고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 학생들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일까? 단지 상급학교를 잘 가기 위한 잔기술을 배우는 것일까? 하고요. 얼마 전 책을 하나 읽었습니다. 1900년에서 1922년까지 가톨릭 대학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강의를 하시는, 토미즘 연구가인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라는 신부님이 쓴, ‘공부하는 삶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쓰면서, 공부를 대하는 마음바탕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려면 집중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집중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의 규율과 진리의 규율에 복종하는 자세다. 이런 복종은 진리와 만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복종하는 것은 겸손의 자세이며, 복종을 거부한다면 다가오는 진리를 놓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고요. 사실 우린 그동안 학문을 대하는 자세를 먼저 배우기보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과목공부부터 시작을 했습 니다. 그러다보니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 지도 모른 채 따라갈 수 밖에 없었고, ? 라는 이유를 모르니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기껏 성적이 나온다 해도 학년이 넘어가면 더 이상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맛볼 뿐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하시면서 그러나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는 말씀을 하시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방식대로 주님을 보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똑같은 선생님 아래서 같은 교실에서 같은 친구들이 배웠건만 점수는 제 각각입니다. 여기서 당신은 어린이를 껴안으며 말씀하십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는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도 예전보다는 맹랑해졌지만 그래도 취학 전 아동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약한 것을 아니까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도 아니까요. 우리도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린 어느 사이엔가 어른이 되면서 하느님의 도우심보다는 내가 세운 계획, 내가 하는 노력에 열중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멀리 밀쳐내지요. 하느님 제가 좀 바쁘니까 이따 오세요 하면서요. 당신을 참되게 만나는 마음 바탕부터 다져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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