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야 58,1-9;마태 9,14-15
오늘 정말 다녀오고 싶었던 곳을 다녀왔습니다. 그 곳은 바로 봉성체 하실 분들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만나 뵐 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 기분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만 2천명 가량의 교적 신자 중에서, 만나야 할 분으로 신청된 숫자는, 고작 스물 한 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만나 뵐 분이 적다고 해서, 건강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착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고되지 않았기에, 홀로 조용히 지내실 수 밖에 없는, 차마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청하지 못하는, 그래서 묻혀서 보이지 않는 그분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왔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단식’ 입니다. 이웃을 생각하기 위해 생겨난 단식이, 언젠가부터 다이어트의 주제로만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먹거리가 풍요로워졌기 때문일까요? 이런 때에 하느님은 참다운 단식이 무언지 말씀하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단식이란, 꼭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 주는 일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행한다면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뒤이어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그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그저 그들을 돕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을 도우면서 내가 치유되고 있음을, 내가 회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떤 어르신에게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던 중, 우연하게도 그 곳 임대 아파트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15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가 보였습니다. 하느님이 좋아하실 단식의 때가 왔답니다. 감추어져 보이지 않던 우리 이웃들을 위해 무언가 실천할 때 그들과 나,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