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수요일. 요나 3,1-10; 루카 11,29-32
여러분들은 왜 기도를 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뭔가 ‘원하는 것’ 이 있어 하시는 분도 계시구요. 어떤 분은 ‘신자이니까 당연히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시고요. 또 어떤 분은 기도를 하다보면, 마치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맛이 있기 때문에 ‘그 맛을 찾고 싶어서’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 저는 그 ‘맛’ 이라는 측면에 대해서 보고 싶은데요. 만약 기도를 했는데도 무슨 맛이 든다는 느낌이 없고, 오히려 마음이 건조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행동을 취해야 올바르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께 오히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느껴질 수 있는 여러 체험, 드는 생각, 이른바 그 맛에 도취되지 않으시길 말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소화 데레사라는 성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입회 전, 어린 나이에 하느님의 은총을 맛보았고, 그 맛이 너무 좋아 수녀원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쁨은 사라지고, 뜻하지 않은 고통이 엄습해 옵니다. 마치 그동안의 마음은 빛으로 가득한 부활 시기였는데, 데레사는 점점 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자기는 곧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천국이란 자기에게는 곧 예수님 자신이었는데, 이제는 믿는다는 사실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경향이 다가오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몸부림을 칩니다. 게다가 마음대로 안되니까 냉담으로 빠져버리기도 하지요. 이른바 데레사의 이 시기는 가르멜 방식에 의하면 ‘어둔 밤’ 이었습니다.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기간은 하느님의 참된 맛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그녀는 그 시기를 통해서 성녀가 될 수 있었는데요.
오늘 요나 예언서를 통해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맛보지 마라” 허나 대다수 교우들은 맛보고 싶어 신앙을 시작합니다. 기도의 맛이건, 교우관계를 통한 맛이건, 교회를 다니면서 부수적으로 생기는 맛이건, 그 맛 때문에 이 생활을 계속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런 맛은, 믿음을 처음 가질 때 당신이 주시는 좋은 맛입니다. 마치 우리 어릴 때와 비슷합니다. 어릴 때는 단 것을 찾습니다. 그래서 사탕, 초콜렛 등을 좋아하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 쓴 것을 찾습니다. 커피, 술 속에서 또 다른 깊은 맛을 찾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느껴지지 않는 사막 같은 길을 걸을 때, 오히려 우린 당신의 참 맛을 알 수 있는 시기가 시작됩니다. 대다수가 예전 맛을 느끼고 싶어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시다가 성장하지 못하는 교우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복음에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처럼, 맛 이상의 맛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