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 금요일. 에제키엘 18,21-28.마태 5,20-26
잠시 모두 눈을 감아주시고요. 여러분 자신 안으로 들어가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눈 감게 만들고 여러분의 지갑을 빼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고요. 눈 감으신 상태에서 제가 인도하는 것에 따라 움직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분들 가운데, 정말로 용서하지 못하는, 용서할 수 없는 그 누군가를 한 번 떠올려주십시오.(잠시 틈을 준다) 생각나셨습니까? 몸이 부르르 떨리십니까? 받았던 상처가 생각나십니까? 좋습니다. 그건 현재 여러분의 느낌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렸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죽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연사 또는 사고사로 가버렸습니다.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을 여러분이 상상해 보십시오. 자~ 시원하십니까? 섭섭하십니까? 미안한 감정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야말로 잘 끝나버렸습니까? 여기서 눈을 뜨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이 바랐던 상황일 수도 있구요. 아니면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순간은 다가올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그렇게 되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얼른 타협하여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 것 같습니까? 아직 살 날이 좀 있으니까. 그런데로 건강하니까. 시간이 남았다고 여기십니까? 하지만 지금 미워한다면, 용서 못한다면 비록 앞으로 시간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용서나 사랑이 안 나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야는 내가 주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지금 사랑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누가 죽어 없어져야 해결된다면 이건 비극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의 힘이 나한테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빌어야 하겠지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전 변화될 수 없습니다. 아마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를 도와주시면 저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보고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린 그들의 올바름보다 더 높은 차원을 가져야만 합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올바로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누굴 미워하다보니, 나도 그만 악해져버린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제 우린 누구를 더 이상 죽일 것이 아니라, 살려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도 참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생명을 주신 그분의 사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