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금요일. 예레미아 20,10-13; 요한 10,31-42
우리가 잘 아는 단어 중에 ‘Imago Dei’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의 모상(模像)’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자에서 제시한 ‘모상’ 은 ‘모방하여 본뜬 형상’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상이 단지 하느님의 겉모습만 비슷한 수준이어야 할까요? 가톨릭 사전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완벽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상이기에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인간은 결코 본성에 있어 하느님과 동등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벽한 하느님의 모상이며 본성에 있어 동등하다. 이는 종말론적인 소망이며 다소는 현재적 실재이다.' 저는 이 사실을 접하며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가, 현재라는 차원에서 한계를 그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린 발을 땅에 딛고 살아야만 하는 한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현재 하느님스러운, 예수님스러운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유다인들이 따집니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율법에 이르건데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내가 아버지의 일들을 하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일들은 믿어라.” 즉 인간 안에서 나오고 있는 하느님의 업적을 볼 줄 알 때, 우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이미 하느님의 나라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당신을 알려 달라고 하셨을 때, 당신이 하신 말씀은 “와서 보시오” 였습니다. 뭘 얼마나 봤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당신을 만나며 변화되었습니다. 그 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스런, 예수님스런 사람이 되어주거나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예언이 지금도 현실화 된다는 사실을 만나고 싶습니다. 서로에게 그런 만남이 되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