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4. 4. 26. 오후 8: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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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사도 2,42-47; 1베드로 1,3-9;요한 20,19-31

  만약 여러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예전과 무엇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이제부터 개인적인 제 얘기를 털어놓겠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과 만나지 못할 뻔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년도 110일 저녁.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던 중, 사제관 계단에서 구르며 발생된 뇌출혈로 인해,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하여 중환자실을 포함해 총 10여일 동안 병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들은 말에 의하면 저의 이 사건은 서울교구 신부님들 사이에 실시간 검색어 1등을 찍었답니다. 바로 1주일 전에 저보다 젊은 신부님이 돌아가셨기에, 비슷한 연령대의 신부가 또 초상이 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다 이틀 후, 제 이름은 검색어 명단에서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염수정 대주교님께서 추기경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ㅎㅎ 저를 맡은 의사들이 그랬답니다. 한동안 피가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항은 얼굴이나 다른 곳 어디도 까진 상처가 없었는데, 유독 머리 안에서만 출혈이 있었답니다. 나중에 CT사진을 보니, 머리 오른쪽 3시부터 6시 방향부위가 허옇게 찍혀 있었습니다. CT는 흑백이니까요. 얼마 후, 다행히 출혈이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약을 복용하면서 이른바 고인 피를 안에서 말리는 작업을 시행하였습니다. 10여일 동안 제 상태는 그야말로 멍~ 때리는 그 자체였습니다. 입원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니, 처음엔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중환자실이 조용한 곳이 아닙니다. 계속 삑삑거리는 기계음이 울려대고, 옆에서 갑자기 숨넘어가는 사람을 봐야 했으며, 간호사는 2시간 간격으로 여기가 어디에요? 팔 다리 들어보세요 라며 눈을 까집고 불을 비추고 있었으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퇴원을 했고, 3주 후 다시 CT를 찍었습니다. 허옇게 되었던 곳이 차차 자기 색깔로 돌아오다가, 다시 한 달 후인 지난 3월에는, 의사가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는데요.

  저는 지금 덤으로 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미 제 인생은 2014년도 1월에 원래 끝났었으니까요. 문득 부활 체험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꼈습니다. 인생이 마치 포맷되었다가 다시 가동되다보니, 지금의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데 눈 돌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떤 생각에 몰입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팝업창이 동시 다발적으로 팍팍 뜨는 것처럼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는 상태가 신기하던데요. 다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기회요 감사지요. 다시 살려주신 그 분께 저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먼저 사람들의 반응이 보였습니다. 제자들과 기적을 본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한 패라며 자기를 잡으러 올까봐 두려워했고, 기적을 본 사람들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불식시킨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게다가 토마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그를 혼내기보다 직접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저는 오늘 토마의 불신앙보다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음식이 맛있는 지 알고 싶다면, 카톡이나 블로거가 올린 사진만 봐서는 모릅니다. 직접 찾아가 음식의 향기를 맡고, 온기를 느끼고, 혀에서 느끼는 감촉을 스스로 체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치를 인정하게 되고, 심혈을 기울인 요리사의 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믿으면 정말 좋을까?, 어느 정도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 믿는다고 내 삶이 달라지면 안 되는데.. 내 상태 그대로 유지하면서 믿으면 안 될까?’ 하지만 음식이 제 맛을 내려면, 푹 잠겨 숙성되어야 깊은 맛을 낼 수 있듯이, 그 분 안에서 제대로 숙성될 때 그때부터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머리로 대충 계산합니다. 그러다보니 매 번 그 상태에 멈추는데요.

  사랑하는 목동 교우 여러분

  복음과 알렐루야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들은 제자들과 다르게 그분을 보지 않고, 어떤 이들의 말을 듣고 신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혹시 생각보다 좀 별로다.’ 라고 여기신다면, 혹시 신앙의 숙성이 덜 것은 아니신지요? 그분을 참되게 만난 사람은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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