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이사야 50,4-9ㄴ;마태오 26,14-25
우리가 그동안 받았던 교육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힘을 키워, 세상에 좋은 일을 하라’ 는 말이, 어느 사이엔가 변질되면서 출세주의로 바뀌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던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따라갔고, 지금도 그럴려고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자리에 올라 힘을 발휘하게 되는 자리에 올랐건만,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권위나 부리고, 제도를 운운하면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해결할 줄 아는 힘을 보여줘야 할 사람들이, 그 힘을 누리고 유지하기에 바쁘던데요.
오늘 독서에 나오는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힘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약해 보입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강한 분이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지 않음을 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곧은 것은 도리어 구부러진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교묘한 것은 도리어 서툰 것처럼 보이고, 진정한 웅변은 도리어 말을 더듬는 것처럼 보인다.’ 대단히 매끄럽고 빛을 발하는 것이 오히려 짝퉁일 때가 많습니다. 참 어른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지 않고 알고도 속아주지요. 하지만 으레 사람들은 그 어른이 속는 줄 알고, 좋다고 똑똑한 척을 합니다. 하지만 옳고 그른 것은 끝내 나중에 결판나지요. 예를 들자면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본당 일을 하는 대표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이 언제나 좋은 판단을 하진 못하지요 그들은 자신이 가진 힘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힘을 키우는 데에 집중했지,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어떤 자리에 앉으면 흥분을 하고 서투르게 행동합니다. 복음에 나온 유다가 그랬습니다. 당장 보기에 주님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동안 기적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주님의 약한 모습에 실망했던 모양입니다. 한 사람도 띄엄띄엄 보면 안 되듯이, 우리도 그분의 계획에 설래발을 치며 바라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분은 더 멀리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