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목요일

2014. 5. 7. 오후 6: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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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3주간 목요일. 사도 8,26-40; 요한 6,44-51

  여러분께 아침부터 문제 드리겠습니다. 신부님들이 기도한다고 앉아있으면 바로 하늘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올까요? 아닐까요?’ 예 그렇습니다. 오래 앉아있다고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시간 때는 들리지 않았는데, 잠시 산책하러 나갔다가 복음의 의미가 다시 들리기도 하고요. 길 가다가 어떤 사람을 보고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하는 적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체험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예전에 강론을 쓰려고 앉아 있었는데, 미사 30분 전까지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는 겁니다. 시간은 다가오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하나도 없고.. ~ 급하지요. 그러던 때에 갑자기 미사 20분을 남겨놓고 섬광 같은 메시지가 던져졌습니다. 저는 받자마자 잊어버릴까봐 무슨 글씨인지도 모를 정도로 휘갈겨 썼습니다. 저만 알아보면 되니까요. 다행히 미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 처음에는 제가 잘나서 메시지를 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보니 저를 위해 강론 메시지를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교우들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것이었는데요. 저는 그저 당신의 도구이니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기도를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동전 넣으면 커피 나오는 자판기처럼 그렇게 기도를 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끌어주셔야 가능하지요. 이끌어 주시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기다림 속에서 익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문()을 활짝 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메시지든지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이지요. 그 자세에서 메시지가 현실이 되기 위해, 어떤 것도 우릴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독서에 나온 칸타케의 내시가 말합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나의 마음의 문만 잘 연다면, 그 분이 오실 수 있는 데에 문제가 없으며, 그 분이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펴는데 아무런 장애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마저 당신께 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상태가 잘 열릴 수 있도록 평소에 점검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의 상태를 잘 체크해 나갈 때, 지금이 그 분이 오시는 때인지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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