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 주간 주일미사. 사도 8,5-8.14-17; 1베드로 3,15-18; 요한 14,15-21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일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애정을 키워가다 보면 재밌는 말도 해주고, 맛있는 곳에 먹을 것도 먹으러 가고, 좋은 경치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내가 이만큼 사랑한다.’ 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약속하기 위해 사랑의 증표를 건네줍니다. 반지나 목걸이 등을 말이죠.. 그러면 그 상대방은 좋아라 하면서 그와 헤어져 집에 와서도 그것을 바라보고, 만지작거리며 마치 애인이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우리 교우 여러분도 그러한 애인이 있습니다. 그 애인은 우리와 함께 사시다가 당신의 할 일을 마치고서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우리를 위해 사랑의 증표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증표는 그저 물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시고 나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의 표지를 남겨주신 분은, 벌써 2000년간 함께 계셨고 나의 인생 역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우린 성령이라 부릅니다. 그런 애인이 있어 왔고 나를 돌봐주시는 협조자가 지금도 나 함께 있음을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약속이 나옵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혹시나 당신이 가시더라도 우리가 혼란에 빠져 헤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협조자이신 영을 보내시려 합니다. 진실로 부모님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마치 자식이 홀로 처음 외갓집에 찾아 가야 하는데 그 길을 잘못 찾아갈까봐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약도를 그려주고 외할머니 성함도 알려주는 엄마의 마음처럼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안에 계시게..” 하도록 당신의 몸은, 비록 하늘나라로 가시지만 영원히 떠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런 약속이 우리를 안심시키고 기쁘게 해주셨기에 우린 1독서처럼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린 가끔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나 혼자 관찰하고, 나 혼자 판단하고, 나 혼자 결정지어 나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면서 외롭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것이 진실이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린 이 미사가 끝나면 또 다시 일주일을 세상과 홀로 싸워야 하는 사투(死鬪)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여긴다면 우리의 삶은 쉽게 망가지게 되고,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분이라는 생각에 젖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2독서 처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모십시오.” 약속되어 내게 오신 분을 우린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쳐다본 것은 아닙니까? 결국 세상은 나 혼자 개척해가야 하는 생각만이 앞서서 그분을 몰라보고 외롭게 살아오시지는 않았습니까? 세례와 안수로 시작된 그분이 내 안에 계십니다. 비록 이제는 눈에는 안 보이는 주님이시지만, 증표와 약속으로 남겨주신 그분의 보살핌을 보면서 이젠 그분을 몰라 뵙는 무례함을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며 성인이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 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늦게서야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서 주님을 몰라뵙는 전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보다 좋은 머리와 영성은 부족해보일지라도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성당에 모여왔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말고 매 순간 벌어지는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때때로 찾아드는 나의 욕심의 목소리를 성령의 불로 정화시켜가며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당신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든든하고 복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