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사도 16,11-15; 요한 15,26-16,4
어릴 때는 홀로 있으면 외롭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꾸 끼리끼리 모이려 하지요. 그런데 반대로 나이가 들면 이제는 누구랑 섞이는 것도 귀찮고, 거기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기도 예전보다 어려워지니, 가장 손쉽게 쓰는 방법이 사람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홀로 있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기도할 때 홀로 있어야 주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고요. 혼자 있어야 중요한 사안에 대해 참다운 고민 끝에 나올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홀로만 있으면, 진리가 다른 곳에서도 올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회에서도, 기도모임에서도, 재속회 안에서도, 서로 각자가 따로 기도하다가 일정한 때가 되면, 한 번씩은 공동으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데요.
오늘 독서에 나온 ‘리디아’ 라는 자매는, 옷감 장수이면서 자기 삶을 잘 꾸릴 수 있었지만, 바오로를 집에 초대합니다. 지금 그녀가 있는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당연히 바오로와 가까이 지내면 주위 사람들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세례를 받고서 바오로를 집에 모시려 합니다. 이렇게 그녀가 열릴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요?
간혹 혼자서 뭔가 하는 것이 멋지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 있는 지역, 구역으로 나눈 이 공동체 생활은 힘들기에, 홀로 깨닫는 것이 더 좋지 않는가?’ 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 교우를 보곤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홀로 깨닫는 종교마저도 현실적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는 누구는 깨닫고, 누구는 깨닫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깨닫지 못한 사람은, 깨달았다는 그 누군가의 말을 찾아 들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는 종교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되는데요. 여기에 깨달은 사람이건 아니건, 사람이라면 모두 구원에 이를 수 있어야 하는데요. 주님께서 쓰신 방법이 그러했습니다.
오늘은 1500년 경, 수도생활을 하고 싶어 오라토리회를 창설한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생활규칙을 나눠줍니다. 생활규칙이란, 가지고 있던 재산을 포기하는 것을 금지했답니다. 우리가 알던 방식과는 다르게 보이기에 어리둥절 할 수 있습니다만, 뜻은 이렇습니다. 모두들 자기의 현 위치에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우 여러분은 저와는 다르게 세상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절제와 조절은 할 수 있어도 완전히 세상을 등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현실에서 타개할 방향을 찾아야 하겠지요. 그 방법이 바로 나눔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분께 묻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다른 이웃들을 살피며, 도움을 주고, 배우려는 노력을 할 때, 위기는 오더라도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수도회가 아닌 재속회의 성격이지요. 수도회가 아니기에 세상과 걸맞는 좀 다른 규칙이 필요한 것인데요. 1564년에 세운 그분의 의도를 살피며 열린 사고방식으로 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