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금요일. 사도 18,9-18;요한 16,20-23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는 ‘불안함’입니다. 해소를 빨리되길 바랍니다. 성가를 부르면서도 우린 그걸 느낍니다. 음(音)의 성질상 불안한 음이 나오면 빨리 해소되길 바랍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더라도 도,레,미,파,솔,라,시.까지 부르다가 ‘시’ 가 길게 진행되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완결 지으려 시는 높은 ‘도’ 에 올라가 붙으려는 자연적인 성질이 있습니다. 이제 음을 겹쳐보겠습니다. 음이 쌓여서 나오는 음을 화음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도, 파, 솔을 쌓아 올리면 Csus4 입니다. 들으면 불안하게 들립니다. 이게 해소되려면 도,미,솔이 되어서 아까 있던 파가 미로 가야 해결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나는 것에도 얼른 해결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불안함이 우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있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사실 제자들의 상황은 이 말씀의 뜻도 모르겠고, 떠난다는 주님의 말에 불안과 근심은 뭔가 막힌 속처럼 답답한 지경입니다. 정체되어 있고, 멈춘 듯 합니다. 당연히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이 시간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잘 들여다 보는 것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그 시간은 바로 하느님의 섭리가 어떻게 풀려나가는 지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독서에 하느님은 환시를 통해 바오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불안했을 것입니다. 지금 바오로가 있는 곳은 남의 나라 지역 유대인들이 많은 동네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복음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돌 맞아죽기 딱 당시 십상입니다. 그러나 일은 의외로 풀려나갑니다. 당시 아카이아 총독인 갈리오는 이 사건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주겠소. 그러나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갈리오의 관심은 지금의 현상 유지에 있습니다. 요사이 언론에 계속 나오는 ‘안전’에 대해 말이지요. 총독이 자기 일이 아니라면서 판결을 안 해주니까, 오히려 혼란을 막지 못한 회당장을 불러 그를 타박하고 일을 마무리 짓습니다. 모든 책임을 그에게 지우고서 말입니다. 만약 갈리오가 진정한 지방의 총독이었다면 선을 긋는 자세가 아니라 그 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 봤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답도 나오니까요.
이 시대가 ‘안전’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그들의 안전은, 지금의 혼란을 덮어버리려는 시도로 보이는데요. 2천년간 세상의 집권자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국민 모르게 덮어야만, 안 보이게 감추어야만 안전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평화와 안전은 다릅니다. 온갖 분란과 분열이 일어난 후에 만나는 평화입니다. 별별 것을 다 만나면 당연히 해결책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를 아셨기에, 바오로가 벌이는 복음전파가 세상과는 상관없게 보이도록 만드시며, 위기를 극복하게 만드십니다. 그분의 섭리가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 가를 보게 해주는 좋은 계기라 여겨집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섭리가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떻게 작용되고 있습니까? 그걸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