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사도 20,17-27; 요한 17,1-11
벌써 오래 전 일이 되었습니다만, 99년도에 획기적인 영화가 하나 나왔었습니다. ‘매트릭스’ 라는 제목의 영화였습니다. 거기서 주인공 네오를 기다린 모피어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자네는 그동안 꿈나라에서 살고 있었네. 기계는 인류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공지능 이란 것을 개발시켰지. 사람에게는 체온이 있고, 전기를 발생시킬만한 에너지가 있어. 인공지능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를 쓰고자 죽은 자를 액화시켜 태어난 아기에게 정확하게 주입했지. 즉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기계들에 의해 식물처럼 재배 되었던거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통제를 위한 꿈의 나라야. 즉 그걸 통해 사람을 통제하지.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주인공이 “믿지 못하겠다.”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어. 진실이라고 말했지” 그러면서 진실을 통해 그 공간에서 꺼내주려 하는데요. 제가 왜 이런 영화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믿고 싶은데로 믿는 신앙은, 나중에 진실을 만나게 될 때 혼란이 오기 때문입니다. 10년 가까운 신부생활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자기 식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현장을 봅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이야기를 하려고 들면 별로 들으려 하지 않는 분을 만납니다. 교회가 복음과 다른 것처럼 보인다고요. 그러나 천상의 복음이 지상에서 현실화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즉 물을 담아서 마시려고 해도 컵이란 것이 필요하듯이, 교회란 천상의 메시지가 현실화되기 위한 공간입니다. 게다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고요. 교회의 시스템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으면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신앙을 내가 좋아하는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왜곡현상이 빚어지는데요.
오늘 말씀은 대단히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바오로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간다면서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마다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면서 작별인사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주십시오.” 라면서, 곧 있을 십자가의 죽음을 잘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신앙은 편안하고 안락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성인들과 시복식을 맞을 복자들이 그걸 말해줍니다. 기도를 하면서 유혹과 대면해야만 하고, 주님의 메시지가 어떻게 현실로 이어지는 지 보기위해, 우리는 자신을 정돈할 필요를 가집니다.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습니다. 노력한다고 꼭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주님이 성인들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기가 단 것을 달라며 조른다고 해서 항상 주지는 않습니다. 아기의 건강이 어찌 될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교회에 관점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2천년간 교회 역사동안 수난 없는 부활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