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7주간 금요일. 사도 25,13-21; 요한 21,15-19
제가 신부로 살면서 제 맘대로 살 수는 없다고 느낀 때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저만의 생활계획표를 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텁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홀로 사시면 시간도 많고, 미사도 지정된 그 시간에만 하시면 되고, 단체 회합시간도 일정하니까, 오히려 계획에 맞춰 잘 사시지 않겠냐?고요. 물론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닥쳐오는 일도 많지요. 숨 넘어가는 사태에 놓인 분에게 병자성사를 가야하거나, 갑작스런 면담신청, 환자 방문, 강의 요청이 오면 그 때부터는 자유는 없어보입니다. 그 사태가 제 1 우선순위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신부는 바빠야 하지만, 자기 바쁨으로 끝나면 안된다고요. 교우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시간을 만들어 놓을 수록 신부가 시간을 비워야 개인의 바쁨 속에 있는 교우들을 만날 수 있다고요. 얼핏 듣기에는 한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교우들을 만나는 열린 공간의 시간이 그 때부터 열리는데요. 그래서 오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는 삶이, 어쩌면 우리의 신앙의 삶의 숙명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선뜻 원치 않은 삶이기에 거부하고 싶지만, 오히려 거기에 동참할 때 진정한 것이 풀리는 것을 경험하는 삶이 신앙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내가 원하는 시간에 벌어진 상황은 아니지만 남이 부탁하는 그것을 해주면서 기쁨을 알게 해주는 삶이 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신임 총독인 페스투스는 바오로 사도를 심문하고 나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분명 죄도 없어 보이는데, 바오로 스스로가 그대로 지금처럼 옥에 갇혀 있다가 황제를 만나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바오로는 황제와의 만남을 통해 로마가 그리스도교로 변화되는 것을 준비합니다. 오직 주님의 뜻하심을 따르기 위해서지요.
오늘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십니다. 물론 그 물음에 얼른 ‘네 그렇습니다’ 하고 답해보지만, 3번에 걸친 질문이 되풀이 될수록 그 대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뜨거워 갈수록 대답도 명확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나의 계획과 다르게 돌아가더라도 그게 은총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