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 주간 화요일.

2014. 6. 17. 오전 8: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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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1 주간 화요일. 열왕상 21,17-29; 마태 5,43-48

  살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건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 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얼굴은 마치 자동차의 계기판처럼 그대로 현재 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 열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과연 이런 때 우리는 이런 점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까요? 그저 피할 수도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원수를 사랑하여라.”입니다. 우린 이 복음을 읽으면서 분통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을 어떻게 제가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기도 싫은 나에게 하느님은 도와주지는 않으시고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라고 말입니다. 내 마음은 편하지 않은데 하느님은 그야말로 공평한 모습을 취하고 계십니다. 과연 그분의 생각은 어떤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마음의 스케일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은 대하기조차 싫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세상의 전반의 일을 다 바라보시고 질서 있게 세상이 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원래 가진 모자이크 조각인 노란색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없는 빨간색도 필요한 분임을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야 그림이 다채롭고 아름답게 구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이때까지 내가 가진 것만을 고수하였지만 당신은 그 이상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린 죽을 때 까지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가진 것만 바라보다 세상을 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창조주이신 조물주의 마음을 헤아릴 때 세상은 여러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하잘 것 없어 보여도 당신의 눈에는 모든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는 말씀은 그 차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나랑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실 예정입니까? 그것이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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