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월요일. 열왕기 상 21,1-16; 마태 5,38-42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똑같이 욕을 하고 흉을 보십니까? 아니면 당한 그대로 복수를 하십니까? 아니면 적법한 절차를 따져 소송을 준비하고 시위를 하고 데모를 하십니까? 아니면 가만히 기도만 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1독서의 내용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아합 임금이, 나봇의 포도원을 뺏는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을 가지려고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나봇을 죽게 만듭니다. 당연히 듣는 우리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만 합니다. 그래서 이후의 말씀을 읽으면, 엘리야 예언자를 시켜 아합 임금이 몰락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복음은 좀 다르게 보입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천 걸음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 천 걸음을 가주어라.” 하시니 말입니다. 순간 혼란스럽습니다.
묵상을 하던 도중, 순간 요즘 사람들의 대응방법이 보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무언가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입으면 그냥 넘어가질 않습니다. 소송을 걸면서, 몇 대 몇이냐? 라며 잘못의 퍼센트를 따지고,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으려 듭니다. 이런 대응방법은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믿는 사람과 별로 다르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손해보지 않으려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마치 세상을 악(惡)과 깡으로 살아야 정의로운 세상처럼 생각합니다. 물론 정당한 옳은 목소리는 내야 합니다. 무조건 덮는다고 능사는 아니지요. 그럼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까요? 어떤 방법을 택하여 정의로움을 부르짖을까요?
이런 생각에 미치게 될 즈음, 저는 다시 복음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바보 같은 사랑’ 은 무얼까? 하고요. 요즘 사람들은 어떤 잘못에 대한 책망을 들었다고 바로 시인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듭니다. 즉 혼내면 반발심을 보입니다. 그래야 자기가 산다고 여기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이런 사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을 받으면 서 자신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하고 스스로 뉘우치게 만드는 사랑’ 을 말입니다. 물론 이 방법은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고 철없었음을 알아차리게 하려면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을 헤아리는데 있어서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듣기 위해서도 당신의 인내심 또한 대단히 필요했을 것입니다. ‘빨리 빨리’ 가 대세인 세상 속에서도 술이 익어가듯, 장이 발효되듯 시간이 요구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린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