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 사도 13,22-26;루카 1,57-80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노플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합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자신들이 믿어온 여러 신(神)들에게서 사람의 영혼을 구해준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고요. 사람의 사는 이유에 대한 명확함을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기 313년,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교인들로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300년간 사람들을 피해 숨어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던 불안함에서 해방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자유가 주어진 때, 오히려 세상을 등지고 사막으로 떠난 이들이 있었습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니트리아의 암모니우스, 팜부스 등이 그 인물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순간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가 생겼는데 오히려 산 속으로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가 공인한 종교의 자유가 생기면, 만날 수 있는 폐단과 문제점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마음껏 믿을 수 있으니 신자 수는 불어나겠지만, 자유롭기에 오히려 신앙생활의 질(質)은 떨어질 우려가 있고요. 공인된 단체가 되었기에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세력을 가질 것이고요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부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린 그걸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자 수는 많아졌지만 주일미사 참여율은 생각보다 낮다는 사실을요. 이미 순교성인을 모시고 있고 이번 시복식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신앙의 자유는 분명 고맙고 은총이 가득한 사건이지만 자유로운 신앙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문제점은 이미 사막의 교부들도 염려했던 바입니다.
여기서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는 세례자 요한을 바라봅니다. 성경을 통해 읽었듯이 그는 성경속의 주인공도 아니요, 조연급도 아닙니다. 오히려 아웃사이더(Outsider)요, 번외인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추앙합니다. 세력도 없었고, 인생을 편하게 산 인물도 아니지만, 광야생활을 통해 자신 안에서 샘솟는 주님의 음성을 외치는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신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 비록 자리는 안정되지 않았지만 남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거나 위축되는 모습없이 나아갔던 모습에서 우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생활은 외로울 수 있습니다. 상대에 비해 뒤쳐지는 듯한 느낌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서 위로를 받아보려 하지만, 그 안에서 해결되는 문제보다 남을 사랑하지 않고 비방하는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광야의 체험에서 주님을 만났듯 우리도 그래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