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대축일. 신명 7,6-11; 요한1서 4,7-16;마태 11,25-30
많은 분들이 본인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가족’입니다. 하지만 말로는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은 가족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던데요. 마음은 그렇지 않는데, 자기에게서 나오는 사랑의 모양새가, 영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 가족도 힘들어 한다고요. 우린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 내가 생각한 사랑이 그대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혹시 사랑을 내가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사랑을 하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내가 한다고 여기다보면, 영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연히 나와 상대는 다르기에 가족이라도 그것을 다 헤아리기 힘들구요. 사랑의 흐름을 따지는 기준인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사랑은 자리를 잡을 수 있는데요.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1독서에서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게다가 복음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누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 사랑을 하신 것이 아니랍니다. 바로 ‘너’이기 때문이랍니다. 마치 가족처럼요. 게다가 이 선택된 사랑은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방향의 주체는 하느님에게서 샘솟고 있습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의 주체요, 기원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때, 내 사랑은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 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마음과 행동이 다른 사랑을 하신 분들이라면 주의 깊게 들으셨으면 합니다. 남들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지 마시고요. 실천하고 있는 사랑의 ‘증거물’ 이 효력을 발휘하게 하십시오. 사실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시간도 걸리고요, 이해력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사랑하고 있었는지, 이제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스스로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전 하던 자기 방식대로의 사랑표현에서 벗어나, 주님 방식대로 해볼 때, 주님이 하셨던 방법대로 사랑해주는 것이, 오염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