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나벤뚜라 주교 학자 기념일.

2014. 7. 15. 오전 6: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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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나벤뚜라 주교 학자 기념일. 이사야 7,1-9; 마태 11,20-24

  며칠 전 본당의 어떤 단체 회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무엇을 해드리면 좋을까요?’ 그러자 들려오는 답변은 저희는 변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 지속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계속 대화를 하는 도중, 그 분도 현재 내부에서 이뤄지는 사태에 대해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셨고, 단체원들의 눈치도 보는 자리에 계신지라,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의 한계를 보고 있었지만, 아직 그 문제점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 계신 분들에게 세세히 제가 본 사항을 말씀드려봤자, 인정을 안 하실 것이기에, 일단 참모진끼리 어떤 문제점을 보고 계시는 지, 자체적으로 점검해 보십시오.’ 라면서 면담을 마쳤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모두들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비록 그게 진실이 아닌, 입에 발린 소리라 할 지라도, 귀가 감기는 소리를 원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이미지 세상입니다. 남에게 좋은 이미지로 비치고 싶고, 그런 평가를 받길 바랍니다. 그 안의 진실은 어찌 되었건 간에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교우 여러분들이 원하는 말만 해드린다면 좋은 신부일까요? 오히려 여러분을 망치게 만드는 원흉이 될 수도 있는데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다는 말은, 그만큼 그 동네 사람들을 사랑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당연히 더 나은 삶으로 가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려 합니다. 안주(安住)하려 듭니다. 왜냐하면 그런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금방 되지는 않으니까요. 노력과 여러 가지 것들이 수반됩니다. 당연히 귀찮습니다. 분명 머리도 좋고, 더 좋은 단계로 가실 수 있는 분들이, 매번 거기서 맴도는 사태를 본당을 돌면서 경험하는데요

  오늘은 보나벤뚜라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은 중세 시대에 철학자요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철학적 지식은 다른 차원의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누가 거기에 멈추어서 안주해버리면 그는 어둠 속에 빠지게 된다.” 즉 이 말은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한 것들이 모든 문제의 완전한 해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항상 어떤 곳이건 문제가 발생되기 바로 직전의 상황은,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때 였습니다. 오늘 독서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믿지 않는다는 표현은, 자신에게 갇혀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를 옭아매는 것은 어떤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걸 넘어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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