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수요일.

2014. 7. 22. 오후 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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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간 수요일. 예레미아 1,1-10; 마태 13,1-9

  사람이 꼭 자격이 있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 부모 자격증이 있어서 부모 노릇하는 것도 아니고요. 남편 자격증, 아내 자격증이 있어서 부부생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점이고요. 가장 원시적인 공동체인 가족이, 2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를 사랑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원이 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댁의 아이 돌보는 능력이, 옆집 할머니가 돈 받고 길러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고요.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아기 돌보는 능력은 할머니가 더 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엄마의 지극 정성보다는 못하지요. 이는 현상보다는 중심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 하는 점인데요.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예레미아에게 내립니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겁에 질려 손사래를 칩니다.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그러자 강하게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능력도 없는 제가 오늘도 여러분 앞에 미사 봉헌을 하는 이유도 이 말씀 때문일텐데요. 능력도 없는 데, 잘 모르는데도 무언가를 맡기는 당신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십자가의 성 요한이 쓴, 가르멜의 산길 1권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예지와 합하려면 앎보다 차라리 알지 못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기주의와 자신의 욕망을 버릴 때, 거기서부터 동시에 우린 정화가 되어, 당신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새댁이 아이에 대한 사랑 하나로 잘 키워내듯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한 마디를 덧붙여 주십니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 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 이 약속을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오늘 복음의 내용도 앞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처음부터 좋은 여건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씨는 좋은 땅에도 나쁜 땅에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 자체는 생명력을 갖고 있지요. 그리고 씨는 사막을 옥토(沃土)로 바꿀 힘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너무 여건이 좋으면 씨를 썩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땅이 비루하더라도 좋은 씨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여지는 열립니다. 오늘도 우린 생명이 가득한 말씀과 성체를 모십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우리는 당신처럼 닮아갑니다. 당신 자체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체험할 때 나 자신을 넘어서는 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만남이 이뤄지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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