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5주간 주일미사.
짧 은 이야기 하나로 강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인구를 조사하는 조사원이 린 치 선사가 산다는 유명한 절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조사원은 선사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여기는 수도승이 꽤 많은 것 같은데요. 몇 명이나 살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 선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한... 만 명 정도 살지요..” 그러자 그 조사원은 정확한 숫자를 알고 싶어서 다시 물어봅니다. “그럼 제자가 정확히 몇 명이나 된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린 치 선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껏해야.. 네댓 명 됩니다.” 만 명이 넘게 사는 곳에 진정한 제자가 네댓 명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에서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만 명이 넘게 산다지만 결국 가르침에 따라 제대로 사는 사람은 네 댓명 수준이었다는 말이지요.
오늘 복음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은 많다하지만, 당신의 말씀을 생명수처럼 생각하고,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르침은 받은 것을 바탕으로 응용이 되어 발전하는 것인데, 보통 사람들은 ‘난 그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 거의 없다.’ 고 여기며 무시하고,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순간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라도 알려주셔야 하는 분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람을 구분하겠다는 겁니까?’ 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라며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다 하십니다. 같은 공간에 앉아서 듣고 보는데도 알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하지만 우리가 학창시절 때, 이미 이런 경험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이야기하시지만, 뒤에서는 딴짓을 했던 우리의 과거를요.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편한 것이라고 처음에 여겨서 수업 중 딴 짓을 했지만, 시험을 치고 난 후 받은 성적표를 보면서 억울해 했던 우리의 모습을 말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말해줍니다. 당신이 뿌리신 씨가 과연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농부는 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압니다. 우리 대다수가 농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소중한 씨이기에 아무데나 뿌리지 않습니다. 좋은 땅에만 심습니다. 하지만 여기 비유에 나오는 농부인 하느님은 마치 아무데나 던지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데나 뿌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이든 떨어져서 어떻게든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가진 땅의 모습은 척박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씨는 하느님이 뿌리시더라도, 그 토질상태는 내가 준비해 나가야 하는건데, 우리의 상태는 준비보다는 결과에만 치중할 때가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앞서 린 치 선사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만 명이 넘었지만, 결국 진정한 제자는 네 댓명뿐 이었답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가르침이 거북하다면서 떠난 사람이 속출합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결국 남은 것은 12제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 속에서 선택받은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땅은 좀 더 개간되어야하고 양분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모르고,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복음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여러분의 신앙상태가 좋은 땅으로 변해가야 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성장하셔야지요. 1독서에서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진 땅이 기름진 땅이 되려면, 어떤 준비가 되어야겠습니까? 사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면, 땅은 저절로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릴 그렇게 키우셨습니다. 씨를 막 뿌리듯이, 손 크게 음식을 많이 만들어 밥을 많이 먹이려 하셨지요. 결국 우린 그게 비경제적으로 보여서 절약한답시고 줄이다가, 인심마저 사라지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주님의 사랑의 참 모습을 깨달을 때, 우리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