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 열왕기 상 3,5-12; 로마 8,28-30; 마태 13,44-5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비유를 설명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예” 하고 대답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뭘 깨달았다는 것일까?’ 하고요. 깨달았다는 그들이 나중에 이어지는 복음을 보면, 여전히 주님을 못미더워합니다. 배신하고 도망가는 현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 하고 응답했지만, 실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른 현장은, 지금의 우리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변화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는 독을 만들지만,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고요.’ 그리고 박물관에서 철기 문화를 보여준 전시회장에 어떤 무사가 쓴 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칼은 완전히 녹이 슬어있었습니다. 녹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기한테서 나왔습니다. 공기와 만나 이뤄진 것이지요. 독사나 철은 좋은 것을 만나도, 나쁜 독이나 녹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사람들은 다릅니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나쁜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즉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봉사와 기쁨을 내놓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린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요.
복음에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여기서 우린 예전에 보았던 이 한마디가 떠오릅니다. “저건 사야 해,” 이른바 백화점에서 본 상품을 보고나서 지름신을 영접하여 강림했을 때 나오는 멘트처럼, 엄청난 과감성과 결단성이 나옵니다. 두고 볼 것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무조건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얻으려는 모습에서 단지 상품 뿐만이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도 그런 과감함과 결단력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물론 과감과 결단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분별력입니다. 복음 중간 부분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내게 주어진 것 중에서 잘 골라내는 능력이 있을 때, 좋은 것이 정말 좋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막 섞여있으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1독서에서는 솔로몬이 주님께 좋은 분별을 하도록 지혜를 요청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건강을 달라는 것도 아닌 그의 요청에, 하느님은 감탄하시며 이렇게 답해주십니다. “자, 내가 네 말대로 해주겠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실로 엄청난 말씀이지 않습니까? 복음의 과감성과 결단력. 그리고 1독서의 분별력을 갖춘 이들은, 2독서에서 어떤 은총이 주어지는 지 잘 나옵니다. “미리 정하신 이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평범한 삶이 아닌,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낼 때, 나로 인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고, 내가 행복해지고 구원받고 있다는 확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삶이 될 때, 우린 이런 것을 깨닫습니다. 복음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받은 보화의 성격을 안다면, 옛것이라고 구린 것이 아니고 새것이라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예전보다 지식을 습득하기도 쉽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지만, 내게 주어진 것을 분별하는 능력은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그분의 능력을 받아 임할 때, 그것이 실생활로 적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