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수요일.

2014. 7. 30. 오전 10: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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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7주간 수요일. 예레미아 15,10-21; 마태오 13,44-46

  요사이 재미있게 읽는 시()가 있습니다. 일본시인데요. 하이쿠라고 해서 17글자로 짓는 시입니다. 딱 한 줄짜리 시이지만, 우리나라말로 번역하자면 석 줄 정도로 간략하게 떨어지는데요.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 올해에도 / 모기에게 물리다니..’ 이런 종류의 시입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런 시를 썼던 바쇼라는 시인은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방랑규칙에 이렇게 삶의 원칙을 적습니다.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마라. 먹는 것이 단순해지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말이나 가마를 타지 말고 자신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다리로 삼으라. 남들과 잡담을 나눈 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자서 자신을 새롭게 하라. 이성간의 하이쿠 시인과도 친하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보라.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등 자신을 절제하고 시를 짓기 위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며 끝없이 방랑하였는데요.

  오늘 독서를 읽으며 예레미아의 모습이 앞에서 말한 삶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예언자의 삶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항상 입바른 소리만 하니 사람들이 재수없게 쳐다보았을 것이고요. 당연히 친구도 별로 없습니다. 오해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탄식을 합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돌아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주의를 주십니다.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된다.” 같은 신자라고 하지만 동상이몽의 현장을 만납니다. 신부님들도 처음 본당에 발령받으면 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이 체험한 것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은데 교우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요. 그런 것을 만난 적이 없기에 그 방법을 싫어합니다. 예전에 했던 방법만을 고수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복음에 나온 투신(投身)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참된 것을 만났을 때 모든 것을 거는 자세. 이것은 주변의 곁가지가 너무 많이 걸려있는 사람들은 하지 못합니다. 단순한 삶일수록 가능합니다. 우린 좀 더 몸과 마음을 가뿐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 해야 할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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