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일 미사
찬미 예수님~ 보통은 제가 이 인사말 다음에 ‘일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인사하였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인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저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렸고요. 어제 시복식 미사도 참례하시거나 방송을 통해 보셨고요. 오늘은 주일입니다. 그러기에 3일 연속 미사를 드린 여러분께 다른 인사말을 드릴 수 밖에 없네요. 제 인사말에 지금 자리에 계신 옆 분께도 이런 인사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주님의 은총 많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요사이 우리의 신앙이 어디로 가야할까? 에 대한 방향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시대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의견과 판단에 대해, 완전히 나를 거기에 맡겨서는 안된다.’ 는 사실입니다. 우린 역사를 통해 이런 것을 보았습니다. 꼭 예를 들지 않더라도, 예전에는 그것이 옳았고, 맞는 결정이라 여겼지만, 몇 십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오히려 부정적인 사건이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게다가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성당 위에 걸린 예수님은 그 당시 사형수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들은 숨으며 도망치며 신앙을 지켜야했지만, 지금은 그 죽음을 기리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버젓하게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시복식 미사를 통해서 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그렇게 순교하신 복자들은, 사실 세상의 논리에 항거한 반역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천주교가 국교도 아닌 이 나라에서, 예전 나라에서 반대한 인물들을, 국가에서 허가한 방송국이 생방송으로 현장 미사방송을 통해, 그 분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전국 각 곳과 세계 150여개 나라를 통해 보도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역사의 판단이란, 꼭 어제와 오늘이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는데요. 하지만 교회의 역사는 2천년간 같은 이야기를 하며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1독서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공정함과 정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이 말하는 정의는, 시대와 조류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정의는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그래서 우린 주님의 정의로움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1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그 분이 말씀하신 정의의 드러남은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이 말하는 달라질 수도 있는 정의의 개념과는 달라 보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말씀하신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정의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정의가 될 때, 참 정의가 나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복자들이 받은 심판은 참 정의에서 나온 판결이 아니라는 이야긴데요. 그래서 2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 배척을 받았던 이들이 어제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심을 보며, 우린 무엇을 느껴야 하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지금 세상이 나에게 말하는 판단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엄청난 사실입니다. 물론 이 삶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 교황님은 시복식 미사 강론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보통 사람들은 세상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미 이런 시각은 신자인 우리 사이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1984년 103위 시성 미사와 어제 벌어진 시복식 광경을 통해 우린 또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세상이 말하는 그 때마다 다른 정의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참된 사랑은 하느님의 뜻마저도 돌려놓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여인은 신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도와주려는 생각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딸을 살리고자 한 사랑의 마음이 이런 발언을 하게 만듭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자존심마저 내려놓는 사랑이 하늘을 감동시키는 사랑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복자들 못지않는 인생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