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토요일.

2014. 8. 8. 오후 5: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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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8주간 토요일. 하바쿡 1,12-2,4; 마태오 17,14-20

  지금부터 말씀드릴 얘기는, 어쩌면 신학교나 수도원만이 간직한 비밀을 누설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만의 내부사항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영적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에 공개를 하겠습니다. 아직 서품을 받지 않은 신학생이나 종신서원을 받지 않은 수도자는, 살면서 갖는 하나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라틴어로 똘레(tolle) 라는 것입니다. 이 뜻은 집어내다, 들어 올리다 는 뜻입니다. 즉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 곳에서 방출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곳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사회적으로 능력이 좋더라도 교회적인 삶과 맞지 않는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 신부나 수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나중에 만날 교우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그런 깊은 의미를 다 헤아리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부르심이 있어서 들어왔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소망이 이뤄지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들을 담당하는 장상이나 생활지도 신부, 영성지도 신부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물론 기본적인 것은 가르치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는 교육방식을 택합니다. 놔둔다고 방치한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지켜봅니다. 아직 준비생들이기에 실수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장상이 같은 지적을 계속하면 본인들은 그것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대다수가 쉬운 방법을 택하려 듭니다. 쉬운 방법이란, 이른바 잠수를 탑니다. 숨는 것이지요. 자신은 은폐시킵니다. 그렇게 숨으면 해결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운이 좋아 신부, 수녀가 되긴 하겠지만 본당의 교우들은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는데요. 즉 놔두는 듯한 이 시간은, 실제로는 본인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하바쿡 예언자가 하느님께 따집니다.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바라보고만 계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어려운 이를 집어삼켜도 잠자코 계십니까?” 충분히 따질만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야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간혹 교회 안에서도 문제 있는 교우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불순명을 하는 이들입니다. 보통의 경우의 신부님들은 마음 좋게 참아주는 방법을 택하시지만, 원래 교회법전 1364조부터 1377조에 의거하면 교회법적으로 처벌되는 형벌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건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억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자기를 봐야 하겠습니다. 그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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