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화요일. 예레미아 30,1-22; 마태 15,1-14
제가 신학생 무렵, 선배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니까?..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처음에는 되게 단순한 질문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조금 곱씹어보니 바로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나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시고요. 주님이 만드셨다는 교회의 가르침도, 내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 보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심지가 굳지 못하기에 그 날의 분위기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받은 밤, 침상에서 뒤척이며 많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사제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정체절명의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살기위하여 당신을 떠나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를 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만 하다보면 내가 세상을 사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망가지는데요.
사제가 되고나서 많은 교우들을 보아왔습니다. 물론 열심한 분들도 계시지만 그 열심함 안에는 고민이 없는, 사색이 없는 열심함도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는데, 교우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새로운 모습보다는 그저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을 일관한다거나 단순한 성취감에 안주합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태도도 무슨 서비스센터처럼, 무조건 뭔가를 해주어야 하는 곳이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곳으로 바라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의 가르침도 다 받아들이기보다는, 개인의 취사선택의 따라서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만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마치 편식을 하는 듯 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편식을 하는 사랑은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의 이런 느낌이 오늘의 말씀과 비슷하게 여겨졌습니다.
예레미아를 통해 하느님은 아픈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너의 부상은 심하다. 네 종기에 치료약이 없고, 너에게 새 살이 돋지 않으리라.” 복음에서는 바리사이를 바라보시며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 먼 인도자다.” 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하느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침과 실천을 보여주셨지만 본질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에 따라 변화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5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그럼 그분의 생각과 일치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동안 우리가 배워오고 살아온 길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그분을 따르며 살았던 삶 속에서 답이 나올 것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