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미사. 열왕기 상 19,9-13; 로마 9,1-5; 마태 14,22-33
저는 처음부터 교구 신부가 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저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수사로 조용하게 사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본당 신부님께서는 저의 이 말에 “네가?~ 넌 교구신부가 더 어울려” 하시는 통에 조금은 심통이 났었구요. 그래서 수도원 가려는 마음도 접은 채, 잠시 가만히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순간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려졌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기도만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도와주고, 치료하고, 먹을 것을 주시는 모습이 마치 영화처럼 스쳐지나갔는데요. 그렇게 당신의 사랑은 늘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빵을 배불리 먹이신 다음, 당신은 따로 기도하려 산에 가십니다. 하지만 새벽 때가 되자, 제자들 쪽으로 오시는데요. 왜 그러셨을까요? 그 안에는 제자들을 만나고픈 사랑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걸어오시자, 베드로는 외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도 명령하십시오.”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오너라.” 이 현장은, 물 위라는 아찔한 상황에서도 서로가 만나려는 시도가 이뤄지는데요.
예전 본당에서 청년 회장을 하던 베드로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맡겨진 일은 열심히 하는, 사명감이 있던 친구였습니다. 전화를 하던 중, 아무래도 직무가 직무인지라 일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우리가 서로 자주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 청년회장은 “제가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라고 응대해 왔습니다. 물론 일은 열심히 하였기에 저는 이렇게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베드로, 우리가 서로가 맡은 것이 있어서 교회 일은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로 만난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그 후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닙니다. 비록 성당이 크고, 직무가 주어졌기에, 벌어진 일은 수습해야 하지만, 교회에서 서로가 일 얘기만 한다면 ‘복음’ 이라는 기쁜 소식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요사이 집에서 애완견을 많이 키웁니다. 정말 ‘반려견’ 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좋아서 키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불편한 진실도 숨어있습니다. 사람보다는 말을 잘 듣기에 키우는 이유도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하고 부딪히는 문제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요. 이른바 개나 식물은 사랑하지만, 정작 사랑해야 할,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린 이 현상을 어떻게 극복하고 바라봐야 할까요?
1독서에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람 가운데에도, 지진 가운데에도,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고 그 뒤 조용하고 부드러운 가운데 한 소리가 들려옴을 느낍니다. 즉 당신의 본 모습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두려운 하느님만은 아니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만남이 이뤄지는데요. 복음에도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기도의 시간을 중요시 여기지만 사람과의 만남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제자들과의 만남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이 만남이 베드로가 조금이라도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만든 힘이 되어줍니다. 2독서에도 바오로는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 이라면서 같은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함을 보여줍니다. 물론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위기가 있습니다. 우선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 없는 사랑은, 편안한 사랑이 아니라 이기주의 사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일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은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실패나 오류에 빠지게 될 위험 속에 자신을 내놓지 않고서는, 자기 안의 참된 위대함을 이룰 수 없다.” 고요. 물론 사람들은 내 맘 같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도망가는 방법을 택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건 사랑을 만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계신 사랑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 잘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그 방향은 나침반처럼 사랑의 최종 목적으로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