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토요일.

2014. 8. 29. 오후 5: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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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1주간 토요일. 1고린 1,26-31; 마태 25,14-30

  1802.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자 정약용은 강진으로 귀양을 갑니다. 귀양 간 그에게 누구도 방을 내어주려 하지 않았기에, 동네 주막집 방 한 칸을 빌려 머물고 있던 차에 열다섯 살 난 황상이란 아이가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정약용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저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세 가지 문제점이 있어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정약용은 대답합니다. 배우는 사람에게 문제점이 세 가지가 있다. 그런데 너에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민첩한 사람은 자기가 총명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문제점이 생긴다. 한번만 보면 척척 외우는 아이들은 그 뜻을 음미할 줄 모르니 금세 잊고 말지. 둘째. 제목만 주면 글을 지어내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저도 모르게 경박하고 들뜨게 되는 것이 문제지. 셋째로 한 마디만 던져주면 금세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곱씹지 않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 만약 니 말대로 정말 둔한 아이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대단하겠니? 둔한 끝으로 구멍을 뚫기는 힘이 들어도 일단 뚫고 나면 웬만해서는 막히지 않는 큰 구멍이 뚫릴게다. 그러자면 그 구멍을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무엇으로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니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잡아야 한다.” 열 다섯에 처음 만나서 들은 가르침을 61년이 지난 임술년에 황상이 그의 저서<임술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이때 나이가 열 다섯이었다. 스승의 말씀을 새기고 뼈에 새겨 감히 잃을까 염려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1년간 독서를 폐하고 쟁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 비록 이룩한 것은 없다 하나 구멍을 뚫고 막힌 것을 툭 터지게 함을 지켰다 할 만하니 마음을 잡고 부지런히 하라는 말을 따랐을 뿐이다. 이제 내 나이가 일흔 다섯이니 주어진 날이 많지 않다. 지금 이후로도 스승께서 주신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고 자식들에게도 저버림 없이 행하게 할 것이다.”

  독서에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라는 말씀이 어떻게 와 닿습니까? 황상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부지런하라는 한 마디를 붙잡고 자신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 받은 것이 비록 작더라도 달란트의 비유처럼 땅에 묻어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금은 별 것 없어보여도 계속 임할 때, 작은 씨가 어떤 꽃을 피우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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