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미사. 예레미아 20,7-9; 로마서12,1-2; 마태오 16,21-27
이제 8월이 다 가고 9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람이 예전 같지 않게 선선한 것을 느끼니 여름은 지나간 같지만 아직 햇볕은 따가운 것을 보면서 마치 이 햇살에 곡식이 잘 여물듯이 ‘우리 자신도 여물어 가야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곡식이 잘 여물려면 적절한 습도와 온도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이 잘 여물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제일 필요할까요? 그 중에 제일 필수조건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커다랗게 보이는 십자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나와 있고 그렇게 배워 알고 있지만 이거 실행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다 같은 신앙을 갖고 있기에 우리 식구끼리 할 말, 못할 말 좀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세상 살기에 하느님을 알기 전과 하느님을 알고 난 후 어떤 때가 더 살기 편했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느님을 알고 난 후가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주일에 늘어지게 잠이라도 자고 싶고, 여행이라고 가고 싶은데, 미사 때문에 걸립니다. 예전에는 못된 사람에게 욕을 실컷하고 살았지만 이젠 서로 사랑하라고 하니 이거 참 난감합니다. 여러 교리를 통해 ‘이렇게 사십시오, 저렇게 사십시오.’ 배웠지만 나하고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난 아무리 열심해도 그렇게 못 살 것’ 같다는 사실만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착한 선행을 해보기도 하지만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야 돼?’ 하는 물음도 가져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고민이 지금 나한테만 벌어지는 사실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그분을 기억하지도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하는 다짐까지 합니다. 당신의 부름을 받은 예언자 예레미아가 이 정도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전파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또 수없는 우리 선조들도 그렇게 피 흘리며 죽어가기까지 하였으니 말입니다. ‘다 살고 싶습니다. 내 목숨 보존하고 싶습니다. 내 명예 더럽혀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탈 없고 편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신앙인들은 마치 어렵게 사는 것처럼 여겨질까요? 과연 그 어려움이 진실로 어려운 삶인가 아니면 구원으로 가기위한 과정인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예수님 시대에 헤로데 왕과 빌라도 총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들은 지금쯤 따져보면 지방의 시장과 식민지 관할 총사령관쯤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각각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죽이도록 결정을 내린 사람이었습니다. 이 둘은 요한과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놓아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민심이 소란스러워질 것을 직감하고 자신이 살고자 희생양처럼 처형결정을 내립니다. 옳고 그른 것을 아는 똑똑한 사람이 자기 한 목숨 구하고자,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영원히 나쁜 사람이라는, 역사의 손가락질을 받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라고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느낀 사람이라면 2독서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린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그저 내 한 목숨 연명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그분께 바치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고 싶습니까? 거룩한 분별을 할 수 있다면 나의 의지와 당신의 은총이 결합될 때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 참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