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간 화요일. 1고린 2,10-16;루카 4,31-37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막연하게 하느님 운운하면서 거창하게 시작하진 않겠습니다. 당장 현실적인 차원에서부터 출발해보지요. 워낙 그런 것을 보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그야말로 이해득실(利害得失)의 차원입니다. 이로움과 해로움 얻음과 잃음을 보면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얻느냐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든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다보면 나중에 내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지 잘 모를 때가 많아집니다. 사랑을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채워져야 한다고 여기면서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보면, 입으로는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그 사랑을 실행해보면서 느낍니다. 실은 허망한 사랑이었음을요. 모래 위에 성을 쌓는 형상이었는데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내 마음은 허해집니다. 나중에는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조차 모르는 상황에 빠지는데요. 여기서 우린 잘못된 시각이 가져오는 불행을 방지해야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됩니다.
오늘 말씀에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려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거룩하다는 표현은, 하느님을 인정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아냥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그저 득실의 차원에서만 보면, 하느님이란 분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사사건건 부딪힐 것이니까요. 하느님은 이해득실의 차원보다는 더 위의 차원, 즉 권위있는 차원에서 시작하십니다. 그 권위란, 자연적인 균형이 잡힌, 욕심과 득실을 너머선 누구도 구분되고 제외되지 않는 차원입니다. 당연히 자기 것을 고집하는 사람과는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작부터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모두를 살리고 싶다면 우린 이 차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입니까? 시작을 잘하실 때 결말도 좋아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