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토요일.

2014. 9. 19. 오후 4: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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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4주간 토요일. 고린115,35-49; 루카 8,4-15

  제 과거 이야기를 잠시 소개해볼까 합니다. 예전에 20대 초반에 축일 선물로 받았던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 책은 토마스 머튼의 고독 속의 명상이란 책입니다. 워낙 토마스 머튼 자체가 영성적인 사람이고 책의 내용의 깊은 지라 분명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책이었는데, 20대 초반 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 중에 한 구절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피조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봄으로써 피조물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우리를 피조물들의 실체와 실상과 진실을 꿰뚫어 보게 되는데 피조물의 이러한 본질은 우리가 피조물들을 우리 자신의 밖에 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올바르게 바라볼 때에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사물들에 집착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사물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 .. 그 때에 비로소 그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기 시작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때는 선물을 준 사람을 속으로 원망하며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신학교에 가고 나서 기도와 묵상에 대해 배우면서, 다시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언뜻언뜻 이해되는 구절이 있는가하면 아직 답보상태도 많았었습니다. 그러다 신부가 되고나서 5년 후에 다시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무언가가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 사람이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이 보였는데요. 그동안 누구도 이 책이 어떻다고 알려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묻지도 않았구요. 하지만 살면서 기도를 통한 생활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요.

  오늘 독서 말씀도 쉽지는 않은 내용입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을 되살아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대다수가 어렴풋하게 여기지요. 그래서 우선은 모르겠으니 덮어두고 나중에 다시보자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시 보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나름 교육도 시키고 책자도 내지만, 당장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여기기에 무슨 강좌를 열어도 잘 들으러 가지 않습니다. 당연히 신앙은 고인 물이 되고, 고인 물은 썩어서 나를 상하게 만듭니다. 교회 역사속에서 이단이 많이 생겨난 이유도 그렇습니다. 교회 가르침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여지의 틀에서만 받아들이려다보니 신앙심이 잘못 휘게 된 경우를 보는데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서지요. 복음에 나온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가 오늘의 말씀을 대변해줍니다. 사실 들을 귀는 처음부터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알렐루야에 나온 말씀처럼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을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주신 말씀을 자신이 이해할 만한 여지에서만 받아들이게 되면, 오해하고 참된 메시지를 축소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진짜 주님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참 안된 일인데요. 씨가 열매를 맺으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하듯이 그런 신앙의 과정을 귀찮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직 우린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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