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수요일. 잠언 30,5-9; 루카 9,1-6
우린 잘 살기 위해서 오늘도 깨어나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에도 나왔고, 조금 있으면 출근도 할 것이며, 만나고 싶건 그렇지 않건, 여러 사람과 만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미사 중에서 체험한 초연함을 잘 유지하고 평안함을 깨지 않으려면, 어떤 방책이 필요할까요? 저는 여러분께 요한복음 10장 17절에서 18절의 말씀을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알듯 말듯 한 이 말씀 안에는, 하늘의 뜻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야만 이들의 숙명이 담겨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세상 속에서 능동성과 수동성을 함께 풀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즉 누군가의 밑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겪어야 하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숨어있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 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참되게 살려면, 가슴 한 켠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만한 중심이 서 있어야만 합니다. 그 중심이란 뭘까요? 복음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불러 그들에게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마귀를 쫒아낼 수도 있고, 질병도 고칠 수 있는 엄청난 힘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이 말씀을 단순하게 주님 말씀만을 따르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선 안 됩니다. 가진 힘을 능력과 돈으로 바꾸라는 말도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스스로 나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할 때, 모든 사람이 복스럽게 느껴지고, 가진 힘과 재능이 참된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 그럴 때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보이는 하늘의 뜻의 중심이 보일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과, 남들이 도와줘야만 얻을 수 있는 영역이 만날 때, 그 때가 하느님의 이름이라 불리우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런 곳을 오늘도 만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