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금요일

2014. 9. 26. 오후 4: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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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5주간 금요일. 코헬렛 3,1-11; 루카 9,18-22

  사람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시간이 허락해야만, 갖고 있는 공간의 분위기가 허락되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생깁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고 말씀하면서 이와 비슷한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시기와 때를 아는 것, 어찌보면 이런 자세는,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을 아는 자세라 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조급함도 없겠구요, 더 이상 남을 미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를 향해 너무 신경을 쓰고 효도를 합니다. 어찌보면 기특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런 현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 하는 표현과 자세는 가질 수 있겠지만, 부모의 진정한 마음까지 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자기 아이도 낳아보고, 길러볼 때, 그제서야 부모의 마음이 보인다면 그 때부터가 제대로 된 효도이겠는데요.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는 열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고나서 처음부터 열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열렬하지는 않습니다. 남에 의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구요. 예전만큼의 하느님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여 신앙이 식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처음처럼 열심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끝은 아닙니다. 잠시 주님과 떨어져 있는 동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여러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다시 만나는 계기도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사람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그 열매가 맺히는 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희망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요.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하느냐?” 는 질문에 여러분은 주님을 누구라도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남들이 이미 여러분에게 알려 준, 마음에도 없는 영혼없는 대답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리서에 나온대로 대답하는 앵무새 대답도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더 솔직해지셔야 합니다. 비록 그 대답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시원찮게 보이고 부끄럽게 여겨져도 앞으로 더 좋은 대답이 나올 수 있도록 연마하시고 기도하시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에 걸맞는 대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하게 대처하시고, 지혜롭게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그 때에 제대로 된 대답과 행동에 따른 실천이 수반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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