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고린1서 12,12-31; 루카 7,11-17
이제 몇 달만 지나면 본당 대표자들의 임기가 만료되고 새사람으로 뽑힌답니다. 제 가 인사를 담당하진 않기에 세부사항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답니다. 그동안 몇 개의 본당을 다녀보면서 느꼈던 매 번 되풀이 되는 사항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책임자의 자리를 꺼리고 어떻게든 맡지 않으려고 합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자리가 주는 중압감이나 여러 군데서 들려오는 소리를 감당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지명을 받았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임하시지만. 직무를 마치게 되면 다시 그 얼굴을 찾기 힘든 상황도 발생하던데요.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맡겨진 직무를 일로만 보았다는 점과, 둘째로는 직무를 임하면서 하느님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기에 임기가 만료되자 모든 것을 접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대표를 맡으면 좋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평단원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시야가 열리기에,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이 보입니다. 마치 미스일 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니까, 어른이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시야가 열린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그저 닥친 일을 해치우느라 바쁩니다. 당연히 고마움보다는 빨리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 오해, 사건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살리기보다는 그저 고통스러워만 합니다. 게다가 그 해결방법을 그저 인간적인 노력으로 해야 한다고 여기거나, 신부님, 수녀님 혹은 남들의 도와줘야만 하는 것이고, 내 손 안대고 저절로 해결되기만을 바라기에, 직무가 끝나면 감사함보다는 해방감에 도취해 계시던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비슷하게 열거되는 말씀 속에서 우린 이것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성령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평소 내가 안 해본 그 일을 맡으면서 ‘그 분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는가?’ 를 발견합니다. 그럴 때, 새롭게 변모된 나를 만나게 되고, 나는 그 직무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두 분이 처음부터 용기있게 교황과 주교의 일을 잘 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직무를 임하면서 고통을 겪으면서 교황과 주교로 변모해 갔습니다. 예수님도 가엾은 사람을 만나면서 원래 의도했던 계획을 변경하십니다. 가나의 첫 기적이 그랬구요. 계획에 없던 이방인 여자를 구하기도 하셨고요. 오늘 과부의 아들도 살려주십니다. 그렇다면 직무는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차원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통로요,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하고 계신 직무를 잘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