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금요일. 갈라 3,7-14; 루카 11,15-26
‘믿음만으로 구원이 된다’ 는 개신교인들의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들 말 그대를 따라가 보자면,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면, 그들 말대로 영접을 하면, 주님은 내 안에 오셔서 사시게 되고, 그로인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인데요. 그런데 이 말은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부족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부르면서 내 안에 모셨지만, 이어지는 그 다음부터 내가 아무 것도 안한다면 이때부터는 어떻게 되느냐?' 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구약시대 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그야말로 신앙인의 가이드 라인입니다. 이렇게 지키면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지침입니다. 지침은 이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실제가 되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대단한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겼으니까요. 자식 하나 없던 그에게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는 말만 믿고 살던 땅을 떠났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셨고요.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라는 말씀을 통해 율법은 제대로 살게 해주는 차원이고, 행동에 따른 실천이 될 때, 믿음으로 거룩하게 변화됨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열심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나 기분이 달라졌던지,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 등으로 신앙생활이 예전같이 않게 퇴보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린 당황합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돌아가고자 사람들이 쓰는 보통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극기(克己)입니다. 자기의 노력 하에서 독단적인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마귀를 자기 집에서 몰아내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정돈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말끔히 치워진 방에 이젠 하나가 아니라 일곱이나 들어와 상태가 더 나빠진다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의지로 어느 정도 마음이 정돈된 것 같지만 오히려 바람이 불면 예전보다 더 흔들립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큰 병을 앓은 환자가 시간이 지나면 병원균은 나가지만, 아직은 요양이 필요한 상태가 있습니다. 면역상태가 완전하지 않으니까요. 이럴 때 다시 병원균이 침입하면 큰일 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요. 신앙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때 중요한 것은 단지 외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 노력이 자리를 잡도록 내면의 상태를 잘 다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의지를 넘어서는 그분과의 합일을 이루도록 나 자신을 잘 돌볼 때, 예전과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린 그게 필요합니다.
